전남 무안 제주항공 사고 지점에서 수거된 희생자 유류품이 유족에 인계된 지 이틀째인 3일, 고인의 마지막 손길이 닿았던 물건을 받아든 유족들은 눈물을 쏟았다. 현재까지 유류품이 수거된 희생자는 약 140명, 이 중 102명의 물품이 가족 등에게 돌아갔다.
유류품을 전달 받은 유족 중엔 KBS 광주방송총국 보도팀 기자였던 김모(30)씨의 가족도 있었다. 김씨의 가방 두 개만이 돌아왔다. 작은 인형이 달린 가방 안에서 일기장처럼 보이는 공책과 여권, 함께 여행을 갔던 남편의 노트북 등이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딸이 남긴 물건을 차마 볼 자신이 없었던 아버지 김모(62)씨는 가족으로부터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는 “흙 한 점 묻은 게 없다고 하더라”며 비통해했다.
아버지 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전화 배경화면을 딸의 사진으로 바꾸며 슬픔을 달랬다. 어제는 어린 시절 딸·아들과 찍은 사진으로, 오늘은 부녀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꿨다. 딸 결혼식에서 입장 전 함께 찍은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던 김씨는 “딸은 내 삶에 버거운 축복이고 영광이었다”고 했다.
고인의 집엔 책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 도서를 좋아해 어릴 때부터 많이 읽었다고 한다. 아버지 김씨가 보여준 딸 메신저 프로필 중엔 신동엽 시인이나 권정생 작가의 글 등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한 딸이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면 어떻겠냐”고 권했다. 딸을 가까이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주 KBS에 입사한 그는 노동자 인권, 일제 강제동원 등 사회적 약자를 취재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엔 2년간 5.18 관련자 46명의 증언을 영상에 담은 ‘영상채록 5.18’을 제작해 상을 받았다.
딸 김씨는 비상계엄 뒤 광주에서 열리는 탄핵 집회 현장을 생중계하는 등 취재하기 위해 휴가 일정을 미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나라가 어떻게 되든 그때 휴가를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며 “죽는 건 찰나의 순간이라 생각하면 위로가 되다가도, 비행기가 다시 뜨고 내렸을 때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날 사고 지점에서 수거된 희생자 유류품은 직계뿐 아니라 형제·자매 등 방계 유족들에게도 전달됐다. 사고 직전 상황이 담겼을 수 있는 휴대전화 등은 수사를 위해 경찰이 보관하고 있다. 전남경찰청은 “확보한 휴대폰·태블릿PC·스마트 시계 등 107개 물품은 유족들 동의를 얻어 참관하에 포렌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