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객들이 웅성거렸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 주민들도 서성거렸다. 지난 1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등산객들은 “704번 버스가 오늘부터 장흥 방면 북한산으론 가지 않는다고 하니, 704번과 37번 중 어느 버스가 먼저 오는지 보고 등산 코스를 정하자”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서울시내에서 704번을 타고 온 장흥 주민들은 이곳에서 내려 37번 양주시 공공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파발~장흥을 오가는 37번은 서울역~장흥 노선을 운행했던 704번의 대체 버스다.

등산객들은 버스가 북한산성입구 삼거리(진관동)에서 유턴하는 걸 지켜보며 다시 웅성거렸다. “어쩐지 지난달 여기 도로를 넓히더라.” 당초 704번 노선 유지를 주장하던 장흥 주민들은 지난해 8월 투입된 37번이 서울역까지 갈 수 있도록 요구했다. 장흥 주민 이병헌(69)씨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동일 배차, 동일 노선 약속을 했는데 기가 막히죠”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경기도와 서울시를 잇는 주요 버스 노선의 폐지·축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유독 집중됐다. 이미 지난해 8월에 106번(의정부~종로), 542번(군포~신사역), 9714번(교하~숭례문)이, 지난해 12월에 773번(운정~구파발역)이 잇따라 사라졌다. 1155번(수락산 청학리~석계역)은 경기도 구간인 청학산~별내 구간이 뚝 잘릴 예정이다. 특히 새벽과 오후 시간대를 중심으로 고정 수요가 탄탄했던 106번의 폐선은 이 버스가 통과하는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역시 이용객이 많은 1155번도 진통이 예상된다. 게다가 대부분 경기 북부와 연결한 노선. ‘지역 소외’와 ‘홀대론’이 나오는 이유다.

 


김훈배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은 “기존 704번을 인수한 운수업체가 은평구 진관차고지 출발 노선만 유지하려는 것도 704번이 장흥을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진단했다.

새해부터 장흥 주민은 서울과 ‘불편한 관계’가 됐다. 그간 없었던 환승이 생기면서다. 정모(70)씨는 지난 2일 다리 치료를 위해 서울 은평구의 한 병원에 다녀왔다. 그는 “일주일 세 번 가던 병원을 이젠 한 번만 갈 생각”이라며 “다리 고치러 갔다가 되레 다리가 더 아플 판”이라고 말했다. 김모(58)씨도 “서울역에서 KTX를 타기 위해 37번을 타고 구파발역으로 간 뒤 704번으로 갈아탔다. 한 번에 가던 걸 두 번에 가야 하니 배는 힘들어진 셈”이라고 했다. 그는 "단절까지는 아니지만, 지역 소외가 서울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민도 장흥행이 불편해졌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온 등산객 김영철(46)씨는 “구태여 환승하면서까지 송추나 장흥 쪽 산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달 9일. 북한산성입구 너머 송추 부대에서 훈련을 받은 예비군들이 704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서울에서 오는 이들은 올해 이곳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으려면 좀 더 품을 들여야 할 것 같다. 이날 오후 10시30분쯤. 한 장흥 주민이 구파발역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37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벌써’ 끊기는 시간. 그는 “이제 서울에서 모임 갖기는 힘들 것”이라며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