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절반을 마친 V리그 막판 여자부 최고의 팀은 정관장이었다. 정관장은 3라운드 전승(6승)을 포함해 막바지 8연승을 달렸다. 12승 6패, 승점 34점. 1위 흥국생명(승점 43), 2위 현대건설(승점 41)과 격차는 2~3경기 차다. 남은 세 차례씩의 맞대결 결과에 따라 충분히 역전도 노려볼 수 있다.
3일 대전 신탄진 정관장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염혜선은 "상위 팀과의 맞대결을 꼭 잡아 선두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매 경기 같은 마음으로 하다 보면 1등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만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고희진 정관장 감독은 "혜선이가 정말 잘 해줬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부상 없이 주장이자 세터로서 팀원들을 잘 다독였다"는 거였다. 시즌 초반 4연패에 빠지기도 했지만 동료들을 격려해 팀을 한데 묶기도 했다. 그는 "지면 기분이 너무 안 좋다. 너무 힘들었다. 분위기는 이겨야만 바뀔 수 있으니까 선수들이 처져 있을 때 '배구는 우리가 하는 거다. 이겨내야 바뀔 수 있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떠올렸다.
최고참인 염혜선은 외국인 선수 반야 부키리치와 메가왓티 퍼티위(등록명 메가)에게 정확한 볼 배급을 해 강력한 원투펀치의 위력을 발휘하게 했다. 염혜선은 "주장이기 전에 세터란 포지션다 보니 메가와 부키리치가 좋은 공격력을 잘 활용하려고 했다. 국내 선수들도 같이 득점을 해주면 좋겠지만, 안 될 때는 선수들에게 (공을)더 받아주고 연결해주자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최근 정관장의 연승 행진 비결 중 하나는 서브다. 상대의 공격을 제한하게 만드는 목적타 서브를 때린 뒤 유효 블로킹과 수비로 반격 기회를 만들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염혜선의 날카로운 서브였다. 염혜선은 3라운드에만 무려 11개의 서브득점을 올렸다. 부키리치에 이은 2위. 연속 득점을 자주 이끌어내 서브 시도 횟수(137회)는 단연 1위였다. 염혜선이 후위에 서고, 부키리치와 메가가 전위에 함께 있을 때 많은 연속 득점을 올렸다.
공격 패턴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아웃사이드 히터로 전향한 부키리치의 중앙 후위 공격 비율도 조금씩 늘리고 있다. 염혜선은 "처음엔 파이프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는데, 모든 옵션을 만들어 놓아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후반기에는 완성도를 높여보겠다"고 말했다.
염혜선은 함께 '언니 라인'을 이루는 표승주(33)와 노란(31)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승주와 란이가 너무 많이 도움을 줬다. '혼자라 버겁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옆에서 도와주고, 후배들도 잘 따라줬다. 부담 없이 이야기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했다. 후배들도 의견을 잘 내고 있다"며 팀웍을 자랑했다.
코트 밖에서도, 안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14살 차 후배인 정수지가 본가까지 가기 힘들까봐 차로 데려다 줄 정도로 다정한 선배다. 외국인 선수들과도 자주 대화를 한다. 염혜선은 "내가 올려주는 볼을 때려주는 공격수니까 소통을 잘 해야 한다. 메가도 부키도 대화를 하는 걸 좋아한다. 쉴 때 통역 없이 떡볶이를 같이 먹으러 가기도 했다. 2년 차라 둘 다 한국말도 잘 알아듣는다"고 웃었다.
정관장은 지난 시즌 후반기 돌풍을 일으키며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7년 만에 나선 봄 배구에 선 흥국생명에게 1승 2패로 져 플레이오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현대건설에서 두 차례 우승을 경험한 염혜선으로선 정관장에 온 뒤 첫 챔프전 출전 기회였지만 눈 앞에서 놓쳤다.
염혜선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게 졌다. 부상자가 나오는 바람에 너무 아쉬웠다. 올해는 털어내고 싶다"며 "원래 시즌을 마치면 다른 팀 경기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엔 챔프전 현장에 갔다. '기필코 내년에는 저 자리에 서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정관장에는 우승을 경험해본 선수가 거의 없다. 노란과 박혜민이 전 소속팀에서 트로피를 든 적은 있을 뿐이다. 염혜선은 후배들에게 우승의 기쁨을 알려주고 싶어했다. 그는 "(박)은진이와 (정)호영이가 지난 시즌 처음 봄 배구를 가보고 너무 좋아했다. 우승은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기분 좋은 경험을 함께 하고 싶다. 힘든 훈련을 이겨냈으니 이번에는 꼭 마지막에 웃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