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 휘젓는 머스크…"나랑 대화를" 정치인들 줄섰다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만난 멜로니 총리와 머스크 CEO. EPA=연합뉴스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만난 멜로니 총리와 머스크 CEO. EPA=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유럽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머스크 라인’을 탄 정치인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별도 면담을 갖는 등 유럽의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하면서다.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트럼프 당선인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비공식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멜로니가 트럼프와 급격하게 가까워진 배경엔 트럼프의 최측근인 머스크의 영향력이 있다는 게 서방언론의 관측이다. 머스크는 2023년 6월 이탈리아 총리 관저에서 멜로니와 한 시간 넘게 회동한 이후 공공연히 친분을 과시했다. 지난해 9월 멜로니가 미국의 한 싱크탱크로부터 세계시민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는 “멜로니는 내면이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며 머스크가 직접 시상자로 나서기도 했다. 트럼프 역시 멜로니와 지난달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만난 후 “우리는 너무 잘 맞는다”며 ‘친구의 친구’에게 호감을 보였다. 

멜로니의 입지는 더욱 커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국내 정치 혼란에 휘청이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트럼프와 말이 통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NYT는 “멜로니가 머스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임기가 시작되면 멜로니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리스 바이델 독일대안당 대표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의 토론 포스터. 알리스 바이델 엑스 캡처

알리스 바이델 독일대안당 대표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의 토론 포스터. 알리스 바이델 엑스 캡처

 
독일의 알리스 바이델 독일대안당(AfD) 대표도 머스크 바람을 타고 상승 중이다. 독일대안당은 과격한 반이민 정책으로 극우 정당이란 의혹을 산 탓에 그동안 경원시됐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머스크가 엑스(옛 트위터)에 “독일대안당만이 독일을 구할 수 있다”는 글을 올리며 지지 의사를 밝히자 상황이 반전했다.


바이델은 머스크와 9일 저녁 7시(현지시간) 엑스를 통해 온라인 대담을 하기로 하고, 연일 홍보물을 엑스에 올리고 있다. 독일대안당 관계자는 슈피겔에 “머스크처럼 쿨한 사람이 당을 지지함으로써 국내외에서 당의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너차이퉁(FAZ)은 “바이델 입장에선 트럼프의 친구이자 가장 돈이 많은 사람과 동등한 위치라는 걸 보여줄 기회”라면서 “머스크 입장에서도 비교적 사용자가 적은 독일에서 엑스의 홍보 기회가 되는 윈윈 게임”이라고 분석했다.

친기업 성향의 크리스티안 린트너 자유민주당(FDP) 대표는 지난달 20일 엑스를 통해 머스크에게 “한 번 만나보고 정책토론을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대안당은 자유와 기업에 적대적”이라며 “우리가 만난다면 자민당이 어떤 정당인지 보여주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머스크의 입김이 세지는 만큼 유럽 기성 정치인들의 반발도 거세다. 머스크로부터 “바보”란 소리를 들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4일 “소셜미디어에는 괴상한 말로 관심을 끌려는 인간들이 많다”며 영어로 “관종에는 먹이를 주면 안된다(Don’t feed the troll)”고 언급해 대놓고 저격했다. 자민당의 린트너 대표도 최근엔 “머스크는 창조적 기업가가 정치적으로 정상적인 판단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는 좋은 예”, “미국의 이익을 위해 독일을 약화하고 싶어한다”며 비난 모드에 들어갔다. 

머스크와 멜로니의 우정 덕에 유럽에서 발언권이 세진 이탈리아의 경우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은 이탈리아 정치에 대한 머스크의 발언이 위험수위를 넘나들자 “주권을 존중하라”고 쓴소리를 했다. 이탈리아 정치분석가인 프란체스코 갈리에티는 지난 3일 텔레그래프에 “트럼프를 향한 멜로니의 길은 머스크를 통해서다. 그러나 트럼프와 머스크의 브로맨스가 지속될 것이라고 100% 확신하느냐”고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