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계엄 난제만 24개…"여야, 정치 영역까지 덮어놓고 맡겨"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정식 변론이 14일 시작되는 가운데, 헌법재판소엔 그 후폭풍으로 넘겨진 다른 헌법적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12·3 계엄 이후 쟁점이 돌출될 때마다 일단 헌재로 넘기고 본 ‘정치의 헌법재판화’ 풍토 때문이다. 헌재로선 정치와 사법이 얽히고설킨 수많은 난제를, 사상 세 번째 대통령 탄핵 심판과 동시에 풀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첫 정식 변론을 이틀 앞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입구에서 경찰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임현동 기자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첫 정식 변론을 이틀 앞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입구에서 경찰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임현동 기자

계엄 관련 헌재 사건 24건…정치·헌법 엮인 첩첩산중

13일 기준 12·3 계엄과 관련해 탄핵소추된 인사는 윤 대통령을 비롯해 한덕수 국무총리,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 4명이다. 또 이 과정에 국가기관 간 벌어진 권한 다툼을 심판해달라며 낸 권한쟁의 사건이 5건(이 중 1건은 취하),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가 위헌적이라며 낸 위헌확인 사건이 15건이다.

지난 13일 첫 변론준비기일이 진행된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은 정치·헌법 쟁점이 뒤엉킨 대표적 사건이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탄핵안 사유 중엔 ‘계엄 선포 묵인·방조’라는 계엄 위헌성을 다루는 본류 사안뿐 아니라 ‘대통령 권한대행 때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자 미임명’이라는 사유도 담겼다.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재판관 임명권이 있는지 기존 결정례도 없고 헌법학자 간에도 이견이 있었던 문제다. 지난달 재판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3명 후보자 모두 “임명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냈으나, 여당은 반대 뜻을 펴고 있다. 이런 와중 헌재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를 심리하게 됐다.

10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각각 찬성, 반대하는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10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각각 찬성, 반대하는 시위대가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아울러 한 총리 탄핵안 가결(192명 찬성) 직후 국민의힘이 맞불로 낸 권한쟁의 심판 역시 탄핵의 절차적 정당성과 연계돼 고려할 부분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에 대통령 탄핵 의결 정족수(200석 이상)를 적용하지 않고 총리·국무위원 탄핵 정족수(151석 이상)를 적용한 것이 위헌이라는 논란이다.


“탄핵소추가 위헌이므로 직무정지도 풀어야 한다”는 여권 일각 주장에 헌재는 지난달 30일 “국회 탄핵안이 통과됐다면 헌재 탄핵심판 결정 전까지 직무정지 효력에 아무 다툼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긴 했으나,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한 것은 헌정사 처음이기 때문에 의결정족수 문제 역시 헌재가 매듭을 지어야 한다.

한 총리 후임인 최상목 권한대행을 둘러싼 사건도 헌재에 다수 접수돼있다. 오는 22일 열리는 국회-대통령 간 권한쟁의심판은 최 권한대행이 지난달 31일 헌법재판관 3명 중 2명만 임명한 것을 두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의 재판관 선출 권한 등을 침해했다”며 지난 3일 냈다. 한 총리의 재판관 미임명 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발부받은 1차(지난달 31일)·2차(지난 7일) 윤 대통령 체포영장에 대해 윤 대통령 측이 낸 권한쟁의심판도 헌재가 심리 중이다. “내란죄 수사권 없는 공수처가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는 것은 무효”라는 취지로 청구됐다. 이 중 1차 체포영장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은 영장 시효 만료(지난 6일 자정)에 따라 윤 대통령 측이 취하했다.  

지난달 2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신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달 2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신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나서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치 사법화에 헌재 과부하…“정치권, 스스로 정치 소멸”

헌재에 놓인 사건은 헌법적 논란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 대부분이라 향후 어떤 결정을 내려도 한쪽의 비난이 불가피하다. 입법부 방치로 ‘재판관 4인 체제’로 지내다 우여곡절 끝에 8인 체제가 됐으나, 입법부가 떠넘긴 논쟁거리가 한가득이다. 감사원장·중앙지검장 탄핵심판 등 정치싸움으로 넘어온 사건도 이미 많은 상태에서다.

이번에 넘어온 계엄 관련 사건은 3명으로 구성되는 지정재판부에서 중복되는 사안을 병합하거나, 심리 가치가 적은 사건을 각하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정치적 사건이 접수된 것만으로 헌재의 부담은 커질 수 있다”며 “정치권이 헌재에 정치·정책 영역까지 덮어놓고 맡기는 것은 스스로 정치 영역을 소멸시키는 것으로서 그 피해는 국민이 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