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직후 한 달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트라우마) 치료의 골든타임입니다. 우선 상실을 받아들인 다음 떠나보낸 가족을 마음속에 재배치하는 식의 애도가 뒤따라야 장기적인 정신적 후유증을 막을 수 있습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직후 현장으로 달려간 심민영(49)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선 장례 먼저’라는 생각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미룬다거나 아예 동굴 속으로 들어가 상담 자체를 거부한다면 참사 직후 한 달에서 최대 석 달로 규정한 트라우마 치료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면서다. 정부 등 지원에 대해서도 “적기는 사고 발생 직후”라며 “2주쯤 지나면 언론의 관심이 사라지고 한 달이면 지원책이나 예방책 논의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트라우마센터는 2013년 재난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위기대응 활동을 펼친 국립서울병원 심리위기지원단을 모태로 해 2018년 4월 정식 개소했다. 심 센터장은 2019년 강원산불·헝가리유람선 침몰사고, 2020년 코로나 대유행, 2022년 이태원 사고 등 대규모 재난 발생 시 ‘통합심리지원단’을 이끌며 재난 후 국민 정신건강 회복에 힘썼다. 지난 10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심 센터장과 전화 통화로 인터뷰했다.
심 센터장은 무안공항 등에서 만난 유가족들의 심리적 충격이 처참한 상태였다고 전했다. 다른 대규모 재난과 달리 사고로 흩어진 시신 본체와 편(片·조각)을 수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 탓이었다. 심 센터장은 “온전하지 못한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충격적이었고, 편을 찾지 못하거나 바뀔까봐 하는 걱정과 고통이 컸다”며 “갑작스럽게 닥친 외상성 상실에 ‘나도 같이 갔어야 했는데’, ‘생전에 더 잘할 걸, 연락 왔을 때 더 따뜻하게 할 걸’이라며 본인 탓으로 돌리는 등 자책과 회한을 하는 유족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일부 유가족은 사고가 발생한 공항 자체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심 센터장은 “상담 거부율은 25~30%로, 다른 재난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트라우마 치료는 내담자가 먼저 센터를 찾는 게 아닌 ‘아웃리치(전문가의 현장 방문)’를 원칙으로 한다. 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사고 직후 지역 기초센터의 재난전문 상담가를 중심으로 한 공공부문 가용인력 320여 명을 무안공항·목포대 기숙사·분향소 등 주요 스팟에 투입했다. 지난 9일 기준으로 유가족과 소방관 등 재난대응인력에 대한 상담을 446건 진행했고, 장례를 치른 각 지역에서 개별 상담을 시작했다. 심 센터장은 “재난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경험인데, 이럴수록 사고 관련 정보를 습득해 상황에 대한 통제감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사고 원인·진상 조사 과정 등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해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등 국가적 트라우마를 겪은 경험이 축적되면서 재난 발생 시 심리지원 분야의 지원이 보다 신속해졌다고 한다. 심 센터장은 “세월호 이후 재난 발생 시 전국 단위로 국가적 심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했다”며 “민방위 훈련처럼 상시에 촘촘한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되레 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참사에선 유족들과 초기 스킨십이 잦은 전담 공무원과 제주항공 직원 등 현장 지원 인력에 대한 심리 지원·교육이 제공됐던 것도 큰 변화”라고 덧붙였다.
특히 사고 유족들에게 쏟아진 근거 없는 음모론과 비난 등 2차 가해에 대해서도 경계했다. 심 센터장은 “1차 사고보다 이후 가해지는 2차 스트레스가 정신적으로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힘든 일을 겪은 이에겐 열 마디 좋은 말보다 한마디 나쁜 말이 더 꽂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사자는 최대한 2차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원천 차단 등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참사 관련 기사에 댓글 창을 없애거나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내뱉는 사람을 저지하는 등 사회적인 자정 작용이 일어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