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1월 1주차(2024년 12월 29~2025년 1월 4일)에 표본 감시 의료기관(300곳)을 찾은 외래 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 환자 수는 99.8명으로 전주 73.9명보다 약 1.4배 늘었다. 호흡기 표본감시체계가 시작된 2016년 이후 8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특히 13~18세가 1000명당 177.4명, 7~12세가 161.6명으로 초ㆍ중ㆍ고 학령층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고위험군인 65세 이상은 35.1명으로 집계됐다. 현재 유행을 이끄는 건 A형 독감(H1N1, H3N2)이다. 고열, 오한, 근육통 등 전신 증상과 함께 기침, 가래, 인후통 같은 호흡기 증상이 나타난다.
독감 환자가 급증하면서 입원환자도 1452명까지 늘었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8~2019년의 정점(3314명) 대비 낮은 수준이지만 계속 늘고 있다. 입원 환자의 절반 이상은 65세 이상(55.1%)이며 50~64세(16.4%)가 그 뒤를 이었다.
질병청은 “겨울 독감의 유행은 보통 겨울방학을 계기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라며 “향후 1~2주 이후 유행 정점을 지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소아청소년 환자가 줄면서 조만간 독감 유행은 주춤하겠지만 설 연휴 이후 중환자가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보통 호흡기 감염병은 어린이와 청소년층에서 먼저 유행하고, 고령층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나타낸다”라며 “전체 유행 규모는 줄더라도 고령층을 중심으로 중환자와 사망자가 늘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행 규모가 커지면 보통 1주일 정도 시차를 두고 중환자가 늘어난다. 엄 교수는 “설 연휴 이후가 고비가 될 것”이라며 “가족 간 모임 등을 통해 독감 유행이 어린이와 청소년층에서 고령층으로 옮겨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올해 독감 유행 규모가 이례적으로 커진 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조치로 독감 감염자가 확 줄어든 영향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1주차 독감 의심 환자는 1000명당 2.4명으로 집계됐다. 감염이 줄면서 우리 사회 집단 면역이 떨어진 것이다. 독감뿐 아니라 호흡기세포융합 바이러스(RSV), 사람 메타뉴모바이러스, 코로나19, 백일해,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등 다수의 호흡기 감염병이 한꺼번에 돌고 있다.
정재훈 고려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독감 등 호흡기 감염병 유행이 심해진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2020~2022년 다른 바이러스 유행이 없어서 그에 따른 리바운드(반동)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지금 돌고 있는 A형 독감 유행이 지나가면 B형 독감 유행이 올 수 있다. 운이 나쁘면 호흡기 감염병에 4~5번 감염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프면 쉬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잘 씻는 등 개인위생에 신경을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위험군은 이제라도 독감 백신을 맞는 게 최선이다.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65세 이상, 만성질환자는 독감에 걸리면 폐렴 등으로 악화할 위험이 큰 만큼 독감 백신을 꼭 맞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 과장은 “백신을 맞더라도 감염될 수 있지만 가볍게 앓고 지나갈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