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더니 갑작스러운 한파로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겨울에도 평년 기온을 웃도는 이상 기온 현상이 나타나거나 6개월 넘게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도 있죠. 아열대 기후 지역인 대만에는 최근 북극 한파가 내려와 영하 8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날씨가 급변하면서 정확한 기상 예측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IT 업계에선 최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상 변동성 예측에 주목합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기상 예보 모델을 넘어 더 빠르고 정확한 날씨 예측을 목표로 하는 AI 기반 프로젝트들은 이미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죠.
슈퍼컴퓨터라고 정확한 건 아니다...전통 기상 모델의 한계
기상 예보의 기본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대기를 역학(물리)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살펴봐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기상청이나 각국의 기상 기관은 수치예보모델(NWP, Numerical Weather Prediction)이라고 불리는 물리 방정식을 중심으로 대기 상태를 예측합니다. 이 모델은 지구 대기와 해양·육지·빙하 등 다양한 요소를 거대한 3차원 격자로 나눈 뒤 각 지점의 온도·습도·기압·풍속 등의 변화를 방정식에 따라 해석하고, 시간대별로 예측 결과를 산출합니다.
이런 전통적인 방법은 물리학과 기상학에 기반을 두고 대기 움직임을 방정식으로 추적한다는 점에서 정확성이 높지만, 매우 높은 연산량을 요구합니다. 지구 전체를 고해상도 3차원 격자로 나누려면 많은 양의 컴퓨팅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전 세계 주요 기상청이 슈퍼컴퓨터에 막대한 비용을 쏟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를 한다고 예보의 정확성이 항상 높아지는 건 아닙니다. 관측 데이터에 약간의 오차가 생겨도 기상 예보는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전통 모델은 실시간으로 급변하는 기상 현상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기상청 예보 모델이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대기 현상을 빠르게 업데이트하기 어렵죠. 갑작스러운 소나기나 게릴라성 폭우·국지적 호우 등에 대한 예보 정확도가 낮아지는 이유입니다.
전통 모델보다 ‘패턴 인식’과 ‘예측’에 강한 AI 모델
기상 예측은 인간이 풀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날씨는 빠르게 변하고 지역별·시간대별 편차가 매우 심해 전통적인 예보 모델이 정확도를 높이기 쉽지 않습니다. 반면, AI는 많은 양의 과거 기상 데이터와 현재 관측값을 학습해 물리 모델보다 더 빠르고 유연하게 예보 결과를 산출할 수 있습니다.
AI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최근에는 관측 장비(레이더·위성·지상 관측소 등)와 사물인터넷(IoT)의 발전으로 천문학적인 양의 기상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있습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학습하는 딥러닝(Deep Learning)을 포함한 AI 기술이 매우 적합합니다. 둘째, AI 모델은 전통적인 물리 방정식에 얽매이지 않고 ‘패턴 인식’과 ‘예측’에 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글은 AI 분야에서 선두주자를 자처하는 만큼, 기상 예보 분야에서도 자사의 기술력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구글의 AI 연구소 딥마인드(DeepMind)는 지난해 AI 기반 기상 예보 모델 ‘뉴럴GCM(Neural GCM)’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뉴럴GCM은 전통적인 물리 방정식 기반 산출 방식과 딥러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의 GCM은 계산량이 너무 많아 실시간 예측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AI 모델은 어떤 근거로 예측했는지 물리적 해석이 어렵고, 극단적 상황에 대한 예측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뉴럴GCM은 이 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구글은 전 지구적 기상 데이터를 수집하고, 다양한 기상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해 모델을 학습시킵니다. 위성 자료·지상 관측 자료·풍향계나 레이더에서 수집한 자료 등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전처리 및 학습시키기 위해 구글 클라우드와 구글 딥마인드의 AI 기술도 활용합니다. TPU(Tensor Processing Unit)같은 특수 AI 전용 칩 또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항로 추천부터 허리케인 대비까지...빠른 결정 내리는 AI 모델
구글 딥마인드가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는 이제 짧게는 수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 후의 단기 기상 변화를 기존 모델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정 지역의 강수량 변화나 구름의 이동 경로, 시간대별 일기 변화를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업데이트할 수 있게 된 거죠. 전통적인 수치예보모델이 며칠 동안 슈퍼컴퓨터를 완전가동해야 했던 작업을 AI 모델은 훨씬 더 짧은 시간에 수행할 수 있는 겁니다.
향후 글로벌 데이터를 통합할 수 있는 AI. 미드저니
AI 모델은 위성 이미지·레이더 자료·센서 데이터 등 서로 다른 형태의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학습한 뒤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항공사들은 비행경로 상의 기류 변화를 정밀하게 파악해 항로를 최적화할 수 있으며,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날씨 예측이 곧 생산량 예측에 직결되므로 효율적 에너지 관리가 가능해집니다.
허리케인이나 초대형 태풍 같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 예측에서도 AI 모델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초강력 허리케인이 상륙할 때 해수면 온도·해상 기압·대기의 대규모 순환 패턴을 기반으로 비교적 정확한 경로를 예측해 피해를 줄이는 데 일조한 사례도 있습니다.
예측 이유 알 수 없는 ‘블랙박스’...AI 신뢰 해결이 과제
AI가 날씨 예측 분야에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에는 많은 전문가가 동의합니다. 실제로 구글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화웨이·AWS 같은 대형 IT 기업들도 기상 데이터를 활용한 예측 사업에 뛰어들고 있으며, 이를 스마트 시티나 자율주행·드론·물류·재생에너지 산업 등과 결합하려고 합니다.
기상 예보는 과학적·사회적·경제적 가치를 모두 지닌 매우 중요한 분야입니다. AI 기술은 이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고, 구글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많은 스타트업·연구 기관·정부 기관이 서로 협력해 기상 예보의 정확도와 활용도를 혁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크로소프트의 기상 예측 AI ‘오로라’. 마이크로소프트
다만, 딥러닝 모델은 흔히 ‘블랙박스’라고 불릴 만큼 내부적으로 어떤 근거로 특정 예측을 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구조 때문에 AI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또한, AI 모델이 과거 데이터 범위를 넘어서는 극단적 상황에 부닥치거나, 학습 데이터 자체가 편향돼 있으면 잘못된 예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각국의 관측 환경이 균질하지 않고, 데이터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결과적으로 AI가 전통적 기상 모델을 대체하기보다는 서로 보완하며 ‘협업’하는 방향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이미 일부 기상청이나 연구 기관에서는 AI 예측 결과를 바탕으로 물리 모델을 업데이트하거나, 반대로 물리 모델의 예측값을 AI 학습 데이터로 활용함으로써 예보 정확도를 높이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융합이 계속될수록 날씨 예보는 더 빠르고 더욱 정밀해질 것입니다.
윤준탁 IT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