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철 헌정회장이 구성한 ‘나라를 사랑하는 원로 모임’은 이날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간담회를 열고 개헌 방향과 정국 현안을 논의했다. 정세균·박병석·김진표 전 국회의장, 정운찬·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정 회장을 비롯해 서청원·손학규·김무성·전병헌 등 전·현직 정당 대표가 참석했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개헌 없는 대선’은 막아야 한다는 게 이날 논의의 결론이었다. 박병석 전 의장은 모임 후 통화에서 “지금까지 성공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다.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제도의 문제”라며 “대통령 개인 선의에 의해 좋은 정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접어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고 말했다.
김진표 전 의장은 이와 관련해 “대통령 선거 전에 개헌은 불가능하고, 대선과 개헌을 같이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도 “현실적으로 대선 전 개헌이 어려워 우리가 적극적으로 (여야 정치권에) 개헌을 설득해야 한다”며 “안되면 대통령 선거 때 (개헌을 특정 시기에 하겠다는) 국민투표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 개헌 논의 중 일부만 국민투표에 부치고, 나머지는 차기 정권 출범 후 2차 개헌을 담보하는 방식의 ‘과도기적 연성 개헌’ 주장도 이날 나왔다고 한다.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는 “여야가 마음만 먹으면 40일에서 60일 이내에도 개헌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의 개헌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당초 우원식 국회의장을 간담회에 초청해 조속한 개헌특위 구성 등을 촉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 의장은 이날 간담회에 들러 “개헌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재 혼란상과 여러 여건이 정리된 다음 얘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뜻을 전한 뒤 자리를 이석했다.
권력구조와 관련해선 여러 의견이 분출했다. 전직 국회의장들은 제왕적 대통령제 탈피에 방점을 두고 “총리를 국회에서 추천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박병석)와 “책임총리제”(김진표)를 제안했다. 정세균 전 의장은 내각제 전 단계인 ‘의회 책임제’ 도입 개헌을 주장하며 “중앙 정부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는 지방분권형 개헌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반면 정운찬 전 총리는 “내각제라고 하면 사람들이 1960년대 장면 정부(1960~1961년)를 생각하는데, 그때는 군부가 개입해 실패했다”며 “한국 의회의 다양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내각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권력구조 개헌의 핵심은 행정부와 의회의 충돌을 막고, 행정부와 의회 권력이 일치해 정치 안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정대철 회장은 “내각제가 이상적 방식이지만, 국민이 선택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원집정부제에 4년 중임제로 개헌하고, 다음번에 내각제로 개헌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모임에서는 계엄 정국과 관련한 의견도 나왔다. 윤 대통령 체포를 둘러싼 경찰-경호처 간 대치 상황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국가적 망신이자 손실”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현직 대통령이 국민이 보는 앞에서 체포돼 가는 모습은 안된다”고 했고, 손학규 전 대표도 “대통령은 헌법 66조에 따른 국가 원수”라며 “윤석열 개인을 보호하자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제적 신망을 위해서라도 탄핵이 인용된 뒤에 구속하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수사를 여러 번 기피했기 때문에 체포영장이 나온 것”(정세균), “법치와 민주주의를 본인 스스로 짓밟아서 발생한 일”(김부겸) 등의 주장도 표출됐다. 한 참석자는 “윤 대통령의 조속한 결단과 자진 출두가 가장 좋은 해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며 “체포 과정의 물리적 충돌이 최악이라는 게 중론이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다음달 3일 후속 모임을 갖기로 했다. 합의된 개헌안을 만들어 우 의장과 여야 대표에 전달하는 것이 모임의 목표다. 헌정회 관계자는 “지난 10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도 면담을 요청했고 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