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수괴 혐의로 15일 오전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체포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지난달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43일 만에 대통령 관저 밖으로 나왔다. 체포 작전은 우려했던 유혈 사태 등 큰 충돌 없이 6시간 만에 종료됐다.
경찰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과 공수처는 이날 오전 4시부터 서울 한남동 관저 인근에 기동대 54개 부대 3200여명을 배치했다. 관저 건너편에 특수 레커(wrecker·구난차) 여러 대를 준비해 철조망과 경호처 버스 차벽을 무력화하기 위한 준비도 했다. 오전 4시 28분 조수석에 ‘공무수행’ 표찰을 붙인 공수처는 관용차량 2대가 관저 제1정문 바리케이드 앞에 도착하면서 사상 첫 현직 대통령 체포 작전이 개시됐다.
공수처 검사가 경호처에 체포 영장을 제시한 건 오전 5시 10분쯤이다. 지난 7일 신한미 서울서부지법 판사가 발부한 윤 대통령에 대한 2번째 수색영장이다. 체포·수색 영장에 적힌 윤 대통령 죄명은 ‘내란 우두머리’였다. 법원은 영장에 “현직 대통령 신분을 유지하고 있어 경호처·대통령실을 통해 동선과 현재지 등을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고, 비화폰은 통신사실확인자료를 통해 실시간 발신기지국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윤 대통령이 개인 명의 휴대전화를 꺼놓는 등 실시간으로 위치를 추적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수색 장소로는 윤 대통령이 소재할 개연성이 높은 관저·사저·안전가옥 등이 담겼다. 수색영장의 유효기간은 21일까지다.
영장 제시와 동시에 수도권 4개 경찰청(서울·경기남부·경기북부·인천)에서 동원된 형사들이 관저 진입을 시도했다. 관저 입구 쪽 바리케이드를 제거하고, 체포조가 탄 버스를 이용해 진입을 시도했다. 국수본은 체포 작전에 공수처 파견팀 형사 570여명, 경찰청·서울·인천·경기남부·경기북부 안보수사대 450여명, 인천 반부패·형사기동대 100여명 등 총 1100여명을 투입했다. 동원된 기동대 버스는 160대에 달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 법률대리인단과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원외 당협위원장 등 20여명이 “영장에 형사소송법 예외 조항이 없으므로 수색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대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오전 5시 35분쯤 “적법한 영장을 집행하고 있다. 방해 행위를 중단하라”며 “응하지 않으면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전 6시 40분쯤엔 경찰 방송 차량을 이용해 “안전한 영장 집행을 위해 버스 차량을 다른 곳으로 이동해달라”고 고지하기도 했다. 대치 상황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로 추정되는 한 중년 여성 1명이 쓰러져 소방당국의 응급조처를 받았다. 병원 이송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2시간가량 대치하던 경찰·공수처는 오전 7시 30분쯤 체포영장 집행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각각 '형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라고 적힌 조끼, 점퍼를 입고 관저 철문으로 향했다.
1차 영장집행 때와 달리 경호처는 별다른 저지를 하지 않았다. 공관 입구부터 관저 바로 앞인 3차 저지선까지 약 30분 만에 진입했다. 오전 7시 34분쯤 1차 저지선인 버스 차벽을 사다리를 동원해 넘고 철조망은 절단기로 끊어 걷었다. 비슷한 시각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 등 일부 경찰력은 매봉산 등산로로 우회해 진입을 시도했다.
2차 저지선을 넘은 건 그로부터 약 10분쯤 뒤인 오전 7시 47분쯤이었다. 버스를 겹겹이 세운 차벽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넘어갔다. 당시 경호처 인력 5~6명이 저지선 너머에 있었지만, 별다른 저지를 하지 않았다. 최종 관문으로 통하는 3차 저지선에 도달한 건 오전 8시 5분쯤이다. 지난 3일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경호처가 스크럼을 짜 ‘인간 띠’를 만들어 5시간 30분가량 버틴 곳이다.
국수본은 문을 부수는 행위는 없었고, 윤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에 대한 입장 발표에서 언급한 ‘소방장비’ 동원도 없었으며 사용한 장비는 절단기와 사다리 정도라고 밝혔다. 당초 경찰은 체포조에 방탄조끼도 지급하는 등 유혈 사태에 대비했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이후 공수처와 윤 대통령 변호인단 간의 협상이 이어졌다. 관저 내부엔 공수처 검사만 들어갔다고 한다.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윤 대통령의 변호인인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이 관저 출입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 측은 ‘자진 출석’ 협상안을 제시했으나 공수처는 “체포 영장 집행이 목표(원칙)”라며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하거나 방문 조사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거였다면 체포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오전 8시 22분 차량 통행용 관저 정문이 열리고 경호처 차량 3대가 드나드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들은 공수처 청사의 폭발물 검색 등 경호 안전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경호처에서 보낸 선발대였다고 한다.
오전 10시 33분 경찰과 공수처는 윤 대통령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윤 대통령과 함께 공수처로 이동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이 유혈 사태를 우려해 자진 출석을 한 것”이라며 “(공수처 검사들이 영장 내용을 한 장 한 장 설명하니까) 젊은 공무원들에게 불상사가 일어나는 걸 노심초사해 ‘빨리 나가겠다. 알았다. 가자’고 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경호처 차량을 타고 공수처로 이동했다.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대한 체포영장은 집행하지 않았다. 김 차장과 이 본부장에 대한 체포영장은 1차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발부돼있다. 경찰 관계자는 “경호 업무를 마친 뒤 변호인과 함께 출석하기로 확약해 영장 집행을 하진 않았다”며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과정에 추가로 입건을 검토한 경호처 직원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