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은 범죄 아니다" 분열만 남긴 尹의 메시지

12.3 내란 사태의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대통령 윤석열이 15일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청사 정문에 마련된 포토라인을 피해 후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성룡 기자

12.3 내란 사태의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대통령 윤석열이 15일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청사 정문에 마련된 포토라인을 피해 후문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성룡 기자

끝내 사과와 반성은 없었다. 자신에 대한 모든 수사는 불법이며,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12·3 비상계엄은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당한 권한 행사라 항변했다. 민주주의의 기반인 선거는 구체적 증거도 없이 조작됐다고 단정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또 하나의 불행이 기록된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에게 남기고 간 메시지엔 적대와 분열만이 가득했다.  

지난 세 차례 출석 요구와 한 차례의 체포영장 집행을 완강히 거부했던 윤 대통령은, 대통령경호처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하며 한남동 관저의 문을 열어주고 나서야 수사에 응하게 됐다. 경호처 관계자는 “지휘부에선 새벽까지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를 요구했지만, 위법 우려로 지시를 따른 경호관은 없었다”고 했다. 

이날 오전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머물다 공수처까지 동행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관저에서) 공수처 검사 2명이 체포영장을 설명하니, 윤 대통령이 ‘알았다, 가자’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자진 출석하겠다고 했지만,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며 “윤 대통령은 마지막 말씀으로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오전 10시 33분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윤 대통령은 체포 직전 2분 48초 분량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대국민 담화를 영상으로 찍어 체포 뒤 변호인단과 대통령실을 통해 공개했다. 휴대폰으로 급히 찍은 듯 화면은 흔들렸고, 화질은 거칠었다. 

15일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경호처 저항 없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을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5일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경호처 저항 없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을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경호 보안 구역을 소방 장비를 동원해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불미스러운 유혈 사태를 막으려 불법 수사지만 공수처 출석에 응하기로 했다”며 “공수처 수사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기관에 영장이 발부되고, 또 영장 심사권이 없는 법원이 체포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는 걸 보며, 수사기관이 거짓 공문서를 발부해 국민을 기만하는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는 것이 개탄스럽다”며 “안타깝게도 이 나라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지층을 향해 “저를 응원하고 지지를 보내주신 것에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특히 우리 청년들이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게 되고, 열정을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저는 이 나라의 미래는 희망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1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응원 집회를 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날 오전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뉴스1

1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응원 집회를 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이날 오전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뉴스1

윤 대통령이 공수처 조사를 받는 동안, 윤 대통령 측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이 연초에 작성한 A4용지 37페이지, 9000자 분량의 자필 원고를 추가로 공개했다. 

윤 대통령은 그 글에서 “계엄은 범죄가 아니다.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며 “‘계엄=내란’이라는 내란 몰이 프레임 공세로 저도 탄핵 소추됐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12·3비상계엄 선포는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 병력 투입 시간이 불과 2시간인데, 2시간짜리 내란이 있습니까”라며 정당성을 항변했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의 이유로 부정선거 의혹을 언급하며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며 “투개표 부정과 여론조사 조작을 연결시키는 부정선거 시스템은 특정 정치세력이 장악한 여론조사 시스템과 선관위의 확인 거부 및 은폐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구체적 근거나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윤 대통령 측은 체포 이후에도 계속 메시지를 공개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관저 앞 지지자들에게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에 대한민국이 위험하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는 서신을 보내며 본격적인 여론전을 시작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호인단을 통해 자신을 공수처의 불법 수사 피해자로 주장했고, 제주항공 참사에 대한 애도와 미국 LA 산불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탄핵 가결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인 맷 슐랩 미국보수주의연합(ACU) 공동의장과 만난 사실이 흘러나오며 대통령으로서의 건재함도 드러냈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에서 진지전을 펼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윤 대통령의 행보는 민주당의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 역풍과 맞물리며, 보수층이 결집하고 여야 간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로 좁혀지는 효과를 거뒀다. 일부 여론조사에선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40%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여론 조사에 취해 윤 대통령이 악수를 뒀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박종준 전 경호처장, 정 실장 등은 체포영장 집행 전 윤 대통령이 제3의 장소에서 조사를 받는 대안을 물밑에서 윤 대통령 측에 제안해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경호처의 충성을 과신하며 응하지 않았고, 결국 헌정 사상 첫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는 것이다.  

지지층을 겨냥한 윤 대통령의 메시지가 대한민국을 더욱 분열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정 진영의 지지율 결집은, 거꾸로 한국 사회가 더욱 단절됐다는 뜻”이라며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탄핵에서 어떤 결론이 나와도 절반의 국민은 불복하는 내전 상황이 올까 두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