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해프닝은 22일 열린 제29회 LG배 기왕전 결승 2국에서 벌어졌다. 이미 1승을 거둔 중국 커제 9단과 반격을 노리는 한국 변상일 9단의 2번째 대결에서다. 백을 잡은 커제가 대국 초반 흑 한 점을 잡은 뒤 바둑판 옆 탁자 위에 올려놨다. 첫 번째 반칙이다. 사석은 반드시 사석 통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반칙 행위가 발각된 건 그 뒤로 30여 분이 지난 뒤였다. 바둑TV 중계 화면으로 뒤늦게 반칙을 확인한 유재성 심판이 대국장에 들어와 커제의 반칙을 선언하고 경고와 함께 벌점 2점을 부여했다.
두 번째 반칙은 그로부터 약 1시간 뒤에 나왔다. 이번에도 커제는 흑 한 점을 잡은 뒤 첫 번째 반칙을 했을 때와 똑같은 자리에 사석을 놓았다. 이를 알아챈 변상일이 문제를 제기했고, 사석이 사석 통이 아닌 곳에 있는 것을 확인한 심판이 변상일의 반칙승을 선언했다.
사석을 사석 통(바둑알 통 뚜껑)에 반드시 둬야 한다는 규정은 지난해 11월 한국기원이 신설했다. 새 규정을 만든 뒤 한국기원은 중국을 비롯한 해외 바둑계에도 관련 내용을 여러 번 통보했다.
새 규정을 만든 이유는 중국과 한국의 바둑 경기 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석도 집으로 계산하지만, 중국은 바둑판에 놓인 돌만 계산한다. 하여 한국 바둑은 사석이 매우 중요하지만, 중국 바둑에서 잡은 돌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 차이 때문에 중국 선수들이 한국이 주최하는 국제대회에서 사석을 아무렇게나 방치해 문제가 빚어진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고수들의 대결에서 사석 한두 개는 승부에 직결된다. 한국기원은 지난해 11월 열린 삼성화재배에서도 이 규정을 적용했었다.
한국기원 김은지 기전팀장은 “중국이 규정을 몰라서 항의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김은지 팀장은 이어 “중국 측은 사석을 사석 통에 즉시 넣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으니 나중에 넣어도 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으나 두 번의 반칙 선언 모두 다음 착수가 진행된 뒤 이뤄졌다”며 “심판이 반칙 행위를 지적한 뒤 사석을 사석 통에 넣은 건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사상 초유의 반칙패 승부로 제29회 LG배 기왕전 우승자는 23일 열리는 결승 3국에서 가려지게 됐다. 우승 상금은 3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