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PS·PI의 경제학’
여기에는 현재 고대역폭메모리(HBM) 세계 시장을 이끄는 SK하이닉스의 상황, 과거 성과급 논란 역사, 반도체산업의 특성까지도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업턴과 다운턴 사이클이 반복되는 반도체산업 특성상 침체기에 접어들어 적자가 심화할 땐 PS는 빈봉투가 될 가능성이 높다. 7조7303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2023년 PS는 0%였다. 노조의 반발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HBM 성공으로 시장에서의 지위가 급상승하며 직원들의 요구수준이 높아졌다. 특히 과거 최태원 회장의 연봉 반납 사건까지 이어진 2020년 성과급 논란 이후 SK하이닉스는 기준이 불분명하단 비판을 받던 EVA(경제적부가가치)제도를 폐지하고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에 활용하기로 기준을 새로 정했다. 노조는 영업이익 23조원의 10%는 2조3000억원인데, 전체 직원 3만2000명에게 1450%의 성과급을 지급하면 이 기준에 미달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성과급 논란은 반도체업계의 인력난과도 관련이 있다. 반도체산업협회는 2031년엔 국내 반도체 인재가 약 30만명가량 부족할 거라고 예상한다. 과거에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로의 이직이 흔했다면, 최근에는 반대 이동이 느는 추세다. 업계 지위가 상승하고, 삼성보다 비교적 기업문화가 자유로우며, 성과에 대해 잘 보상해주는 SK하이닉스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HBM 후발 주자인 미국 마이크론과 중국 메모리 기업들이 한국 직원에게 높은 연봉과 해외체류 조건을 제시하는 상황이기에 직원들은 성과급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의 11년 차 한 엔지니어는 “미국 기업을 가면 연봉이 몇배 뛰는데, 최대실적을 내고도 고작 몇% 더 안 주겠다면 이 회사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실망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사 역시 고민은 깊었다.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잘나갈수록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에 돈을 쏟아부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지난 17일 발행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각국의 반도체 지원 정책이 장기화될 경우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수급불균형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SK그룹 전체의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SK는 2023년 말부터 그룹 차원에서 고강도 리밸런싱(사업구조개편)을 통해 인력감축, 운영효율, 비용절감을 진행하고 있다. SK 관계자는 “지난 인사에서 승진자 절반이 하이닉스에서 나오고 나머지 계열사는 승진자를 줄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도한 성과급 지급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