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스톰’의 전조…배터리 ‘톱3’ 4분기 첫 동반적자 유력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꼽히는 2차전지 업계가 실적 부진의 늪에 빠졌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조만간 실적 발표를 앞둔 SK온까지 전기차 배터리 ‘톱3’의 지난해 4분기 동반 적자 전환이 유력하다. ‘트럼프 2기’ 출범 첫해인 올해가 실적 반등의 깔딱고개로 꼽힌다.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 공장. 사진 LG에너지솔루션

미국 미시간주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 공장. 사진 LG에너지솔루션

24일 국내 2차전지 업계 대표주자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가 지난해 실적을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매출 25조6196억원, 영업이익 575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24.1%, 영업이익은 73.4% 각각 줄었다. 지난해 4분기엔 2021년 3분기 이후 처음 분기 적자(-2255억원) 성적표를 받았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보조금 격인 첨단제조세액공제(AMPC)를 받았지만 역부족이었다. AMPC를 제외한 4분기 영업손실은 6028억원에 달했다.

삼성SDI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날 실적 발표에서 지난해 매출 16조5922억원, 영업이익 3633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매출은 22.6%, 영업이익은 76.5% 각각 감소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마찬가지로 역시 4분기 적자(-2567억원) 전환했다. 분기 적자는 2017년 1분기 이후 7년여 만이다.

2월 초 실적 발표를 앞둔 SK온도 마찬가지다. 업계에선 4분기에만 2000억 원대 적자를 예상한다.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분기 기준 ‘반짝 흑자’를 기록했지만, 다시 적자 늪에 빠질 전망이다. 전망대로라면 2021년 3사 체제가 출범한 뒤 분기 동반 적자를 낸 건 지난해 4분기가 처음이다. 연간 3사 합산 영업이익은 1조원에 못 미칠 전망이다. 2023년 합산 영업이익(3조2116억원)이 무색하다.

위기 신호는 진즉 감지됐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국내 3사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9.8%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3.7%포인트 내렸다. 2020~2021년 30%대로 점유율이 정점을 찍은 뒤 줄곧 하향세다. CATL·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의 거센 공세에 영향을 받았다.


독일에서 열린 2023 인터내셔널 모터쇼에 전시된 중국 CATL의 전기차. 신화통신

독일에서 열린 2023 인터내셔널 모터쇼에 전시된 중국 CATL의 전기차. 신화통신

 
문제는 올해다. 전기차 시장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장기화하는 추세에다 트럼프 2기 출범이란 대형 악재를 맞았다. 트럼프는 당장 20일(현지시간) 대통령 취임식 직후 전임 바이든 정부가 시행한 전기차 신차 비중 확대 정책을 철회한다고 선언했다. 공약으로 내세운 전기차 구매 보조금(대당 7500달러) 폐지 실행도 시간문제다. 유럽도 중국산 전기차를 막기 위해 보조금을 줄이는 추세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배터리 업황은 2025년까지 어렵고, 2026년에나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기차 수요 개선이 업황 회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비관만 할 건 아니다. 신원규 한국경제인협회 초빙연구위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동 FKI타워에서 열린 ‘트럼프 2.0 시대 개막 100시간과 한국 경제’ 세미나에서 “2차전지에 대한 미국의 대(對) 중국 관세가 한국보다 15%포인트 이상 높을 경우 한국이 미국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며 “개별 기업이 사후 관세 예외(exclusion)를 받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배터리처럼) 한·미 양국이 경제안보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전략 산업군은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 ‘패키지 딜’을 통해 사전 관세를 면제(exemption)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