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문재인 전 대통령을 만나 “민생지원금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선 “정부나 여당이 민생 지원금 때문에 추경을 못 하겠다는 태도라면, 민생지원금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그러면서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통계를 언급하며 “20조 추경을 집행한다면 경제 성장률이 0.2%는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민간 기업 주도 성장이란 추상적 비전을 내세웠던 지난주 기자간담회에 이어, 재차 ‘성장’위주로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즉각 “환영하지만, 정국 전환을 위한 꼼수가 아니길 바란다(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추경을 입에 올리려면 지난해 말 예산안 일방적 삭감 처리에 대한 대국민 사과가 우선(김상훈 정책위의장)”이라고 반응했다. 마뜩찮다는 뉘앙스에 가려진 속내는 복잡하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고, 계엄 여파로 경제 성장률 전망이 1%대 초반으로 추락하며, 여당 내에서도 신속한 추경을 통해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현실론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국민의힘도 추경 자체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시기를 1분기 예산 집행 이후로 꼽고 있다. 내부에선 지난해 일방적 예산 삭감을 한 야당의 요청에 떠밀려 선뜻 추경에 동의할 경우 “예산 삭감 책임론은 묻히고, 이재명 대권 가도만 깔아준다”(국민의힘 중진 의원)는 우려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기재부도 그동안 민주당이 요청해 왔던 전 국민 민생지원금과 지역화폐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 최근 주요 경제지표가 일제히 하락세로 전환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장벽 강화 전망 등 통상 분야의 먹구름이 짙어지면서 정부의 입장부터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최 대행이 “어려운 민생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한 게 출발점이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불확실성은 확대됐는데, 예산 조기 집행만으로는 성장률이 0.1% 정도만 올라간다”며 “3월 추경은 늦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선 실제 조기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추경 합의가 더 어려워져 결정과 집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정부의 기류 변화를 느끼는 여당의 심사는 답답함에 가깝다. 국민의힘의 한 지도부 인사는 “기재부가 추경을 두고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