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연휴 뒤 아파트는 쓰레기 전쟁…배출일 달리해도 무소용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쓰레기 분리배출장에서 경비원 김모(67)씨가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정세희기자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쓰레기 분리배출장에서 경비원 김모(67)씨가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 모습. 정세희기자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 지난 28일 분리배출 수거차가 다녀갔지만, 연휴기간 쓰레기 양이 많아 모두 수거하지 못했다. 정세희기자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 지난 28일 분리배출 수거차가 다녀갔지만, 연휴기간 쓰레기 양이 많아 모두 수거하지 못했다. 정세희기자

 

버리면 안 된다고 이렇게 크게 써놔도 몰래 놓고 간다니까요.
 
31일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쓰레기 분리배출장 앞에서 경비원 김모(67)씨가 쓰레기 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과일·조미김 등을 담았던 선물 박스와 술병 여러 개가 늘어져 있었다. 처리장 인근엔 ‘재활용 미리 내놓지 마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분리배출 수거는 다음달 1일 시작한다고 공지했지만 김씨는 이날 오전 6시에 출근하자마자 몰래 버려진 쓰레기를 청소하느라 진땀을 뺐다.

김씨는 “심지어 여긴 원래 쓰레기장이 아니라 청소 도구를 놓는 공간”이라며 “쓰레기가 쌓여 지저분해지면 결국 경비원이 욕을 먹으니 보이지 않게 다 정리했다”고 말했다. 연휴 기간엔 자신이 소속된 용역업체에서 제공하는 종량제봉투나 그릇·유리 등을 버리는 특수규격 쓰레기봉투가 부족해 사비로 사서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예년보다 긴 설연휴가 끝난 이날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여러 곳에선 쓰레기 배출일이 지켜지지 않아 경비원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연휴 2~3주 전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쓰레기가 쌓일 것을 우려해 군·구·동 별로 배출일을 나누고 아파트 엘리베이터나 홈페이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지역 커뮤니티 등에 공지했다. 하지만 이를 어긴 사례가 곳곳에 있었다.

한 쇼핑백에 음료수 병과 알루미늄 캔, 과자 봉지 등을 한꺼번에 넣은 경우도 있었다. 또 다른 강서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이모(66)씨는 “음식물이 담긴 봉지를 페트병이나 종이 사이에 껴서 버리거나, 치킨 뼈 등을 종이 박스에 넣어 그대로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장 앞에 붙여진 안내문. 정세희 기자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장 앞에 붙여진 안내문. 정세희 기자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장 앞에 붙여진 안내문. 정세희기자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장 앞에 붙여진 안내문. 정세희기자

 
주민들은 평소 쓰레기 버리는 날짜와 연휴 기간 분리배출 수거 날짜가 달라 혼선을 호소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정모(36)씨는 “매주 월요일마다 분리수거를 했는데 이번 연휴 기간엔 월·화요일에 수거를 안 한다고 해서 헷갈렸다”며 “쓰레기를 버리려고 잔뜩 들고 갔다가 허탕 치고 도로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을 막기 위해 일부 아파트에선 재치있는 안내판을 놓기도 했다.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장 앞에는 ‘아 생각이 난다, 생활용품은, 아 생각이 난다, 토요일·일요일에’라는 글이, 다른 아파트엔 ‘분리수거는 주말 강력추천’라는 글이 붙었다.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에 붙여진 연휴기간 일회용품 분리배출 변경 안내문. 사진 독자 제공

경기도 고양시 아파트에 붙여진 연휴기간 일회용품 분리배출 변경 안내문. 사진 독자 제공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장 분리배출을 지켜달라는 안내문 앞에 버려진 종이박스들. 정세희기자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장 분리배출을 지켜달라는 안내문 앞에 버려진 종이박스들. 정세희기자

 
연휴 기간엔 선물 포장재와 배달음식 용기 등으로 쓰레기 양이 평소보다 크게 늘었다고 경비원들은 호소했다.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최모(78)씨는 “배출 날짜를 나누니 한꺼번에 버릴 때보다 수월해지긴 했지만 설 연휴엔 절대적인 양 자체가 많아 엊그제 청소차가 가져가고도 못 가져간 게 아직도 쌓여있다”고 말했다.

명절 쓰레기양을 줄이려는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신우용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명절 기간 쓰레기 수거 날짜를 정하는 것 외에도 불필요한 과대포장을 줄이고 분리배출 수칙을 제대로 안내할 필요가 있다”며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나 일관된 정책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