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인허가를 받고도 첫 삽을 뜨지 못하는 건설사가 늘고 있다. 특히 지방은 최근 2~3년 새 인허가 대비 착공 물량이 반 토막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4년 새 인허가 대비 착공 81.2% 그쳐
3일 중앙일보가 국토교통부 통계누리를 분석한 결과, 2021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주택 인허가 물량은 164만5807가구다. 같은 기간 착공 물량은 인허가 대비 81.2%(133만6578가구)였다. 인허가 후 착공까지 시차는 통상 2~6개월. 이 기간 열 가구 중 두 가구는 인허가를 받고 착공조차 못 했다는 얘기다. 약 30만 가구 규모다.
지방 착공 부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유사"
수도권과 지방 간 차이가 컸다. 같은 기간 인허가 대비 착공 비율은 서울이 96.8%, 수도권이 91%였다. 반면 지방은 73.1%에 그쳤다. 특히 2022~23년이 심각했다. 이 기간 수도권 착공 비율은 78%, 지방은 57.2%였다. 지방의 경우 2023년엔 53.8%에 머물렀다. 집값은 물론 주택 착공에서도 수도권과 지방간 양극화가 나타났다는 얘기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 주택 착공 물량이 인허가를 크게 밑도는 것은 경기 침체기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상"이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예년과 비교하면 최근 4년 새 착공 부진은 더 도드라진다. 국토부와 부동산 R114에 따르면 2005~21년 연평균 인허가 물량(51만8259가구) 대비 착공(44만216가구) 비율은 85%였다. 수도권(85%)과 5대 광역시(84%), 기타 지방(85%)이 별 차이가 없었다.
새 집 지을 동력 잃은 건설업계
문제는 윤석열 정부 들어 인허가 자체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주택 인허가 물량은 2021년을 고점으로 지속해서 감소했다. 더욱이 최근 2년간 인허가 물량 중 절반 이상이 지방에 몰려있다.
인허가 대비 착공 물량이 부족한 것은 무엇보다 경기가 안 좋아서다. 허 연구위원은 “경기가 좋을 때는 인허가를 받는 즉시 착공에 돌입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인허가를 받고도 착공하지 못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건설 원가의 급격한 상승,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여파, 미분양 주택 증가, 부동산 시장 양극화 등으로 건설사의 사업 추진 동력이 약해졌다는 것도 착공 부진의 한 요인이다.
주택 공급 비중이 큰 공공택지와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사정도 안 좋다. 2005~23년 준공된 아파트 100채 중 34채는 공공택지에 지어졌다(건설산업연구원). 또한 지난 20년간 아파트 준공 물량 중 19.3%는 재건축·재개발로 공급됐다. 서울은 이 비중이 65%에 달한다(부동산 R114).
그런데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면서 건설사들이 공공택지 입찰에 나서지 않거나, 택지를 분양받고도 잔금을 치르지 못해 계약이 해지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공사비 분쟁과 재개발 분담금,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으로 정비사업도 지지부진하다.
공급 부족 이슈는 부동산 하락기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하지만 회복기 땐 집값 상승을 자극하는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급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익명을 원한 부동산 전문가는 "공급 불안을 불식할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탄핵 정국이 마무리될 때까진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 정부의 주택 공급 목표(5년 내 270만 가구)는 60%도 달성이 어렵고 공급 대란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