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만날때 파운데이션"…뷰티업계 떠오른 큰 손 '관리男'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김모(42)씨는 매달 레이저 수염제모 시술을 받으러 병원을 찾는다. 44만원에 10회권을 결제했고 지난 8개월간 꾸준히 제모했다. 김씨는 “턱에 거무튀튀한 부분만 없어져도 깔끔하고 밝은 인상이 되더라”며 “만족스러워서 지인들에게도 추천하고 있다”라고 했다. 내친김에 기초화장품도 늘렸다. 스킨·로션 말고도 에센스·보습크림에 아이크림까지 바른다. 뷰티 인플루언서가 추천한 톤업 크림으로 얼굴 색을 밝게 하고, 부스스하게 뜨는 옆머리를 눌러주는 뷰티 기기도 샀다. 김씨는 “주변에서 젊어졌다고들 하니, 관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관리하는 남성’들이 늘면서 맨즈(남성) 뷰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스킨과 로션 등 기초 피부관리를 넘어 메이크업, 헤어스타일링 등으로 시장이 커지면서다.   

지난 13일 서울 성수동의 올리브영N 성수 '맨즈 에디트' 코너 모습. 사진 올리브영

지난 13일 서울 성수동의 올리브영N 성수 '맨즈 에디트' 코너 모습. 사진 올리브영

 
지난 13일 찾은 서울 성수동의 올리브영N 성수 ‘맨즈 에디트’ 코너에는 남성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은 남성만을 위한 기초·색조·헤어 등 뷰티 제품을 따로 모아둔 전용 공간이다. 파운데이션 팩트부터 립밤·컨실러·아이섀도·아이브로우 펜슬·니플 패치 등이 비치돼 있어, 얼핏 봐선 여성 제품들과 구분이 안 갔다. 차량용 방향제와 세차용품·단백질 보충제·건강기능식품 등도 눈에 띄었다. 

친구끼리 혹은 연인과 함께 온 남성들이 많았다. 외국인이나 휴가나온 군인들도 각종 제품을 살펴보고 테스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미국에 사는 배모(41)씨는 익숙한 듯 아이브로우와 컨실러 등을 집어 들었다. 그는 “미국 제품들보다 품질이나 가격이 마음에 들어서 한국에 올 때마다 50만 원어치씩 사간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찾은 20대 한 남성은 “데이트하는 날엔 스틱 파운데이션과 컬러 립밤으로 가볍게 화장을 한다”라며 “TV나 유튜브 보면 화장하는 남자들이 이미 많기 때문에 남자의 화장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이곳에서 뷰티 전문가로부터 15분간 눈썹 정돈 체험 서비스를 받아본 전진호(29)씨는 “확실히 인상이 좋아진 것 같아 마음에 든다”라며 “앞으론 집에서도 관리하고 싶다”라고 했다. 매장 관계자는 “남성 방문객은 하루 평균 300명 이상”이라며 “주로 20~30대이지만 중장년층도 온다”라고 했다. 또 “로션처럼 간단하게 바르는 파운데이션이 인기 있고, 색조 화장 입문용으로 립밤과 아이브로우 등이 많이 팔린다”라고 전했다.


한 남성 고객이 올리브영N 성수에서 산 제품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황수연 기자

한 남성 고객이 올리브영N 성수에서 산 제품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 황수연 기자

 
올리브영이 지난해 남성 회원 1000명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10명 중 9명은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라고 응답했다. 이들은 월 평균 7만원가량을 뷰티에 쓴다고 했다. 지난해 맨즈 브랜드와 상품을 전년보다 50%가량 늘린 올리브영은 효과를 확실히 봤다. 같은 기간 남성 스킨케어 매출은 15%, 남성 회원 수도 20% 증가했다. 

뷰티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는 다이소와 무신사에서도 남성 뷰티 소비자가 늘고 있다. 50여 종의 남성 화장품을 판매 중인 다이소에선 지난해 남성 화장품 매출이 전년보다 30%가량 증가했다. 무신사에선 지난해 하반기 남성 고객의 뷰티 관련 키워드 검색량이 전년보다 6배 이상 늘었다. 무신사는 지난달 남성 뷰티 유튜버인 ‘티벳동생’과 협업해 맨즈 뷰티 추천 기획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올리브영N 성수 '맨즈 에디트'에서 맨즈 브로우 서비스를 받고 있는 고객. 사진 올리브영

올리브영N 성수 '맨즈 에디트'에서 맨즈 브로우 서비스를 받고 있는 고객. 사진 올리브영

프리미엄 전략을 쓰는 백화점에는 헤라와 라네즈, 비오템 등 기존 제조사의 옴므(남성) 제품이나 랩시리즈 등이 입점해 있는데 이곳서도 관련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지난해 남성 화장품 구매 매출은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 백화점 업계는 남성을 위한 뷰티 팝업 스토어를 열거나 바버샵 같은 남성 맞춤 매장으로도 남심을 공략 중이다. 바버샵은 일반 미용실과 달리 헤어뿐 아니라 수염·눈썹 정리 등의 서비스를 해주는 곳이다. 현대백화점은 천호·판교점에, 롯데백화점은 평촌·수원·부산·중동점 등 8개 점포에 두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탈모 전문 케어 매장(헤솔)도 강남점과 광복점에서 운영하고 있다.

롯데몰 수지점의 마제스티 바버샵. 사진 롯데백화점

롯데몰 수지점의 마제스티 바버샵. 사진 롯데백화점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전년보다 4% 증가한 약 1조2000억원 수준이다. 유로모니터는 “중국·한국같이 남성 스킨 케어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성숙한 시장에서는 수요가 보다 진보된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남성용 그루밍(grooming, 치장) 트렌드는 제품 다각화, 효능 업그레이드, 프리미엄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