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검증' 꺼내고 '가자 구상' 밝힌 트럼프…김정은에 주는 신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 "검증된 핵 평화 협정(Verified Nuclear Peace Agreement)을 선호한다"고 밝히면서 그의 북핵 해결 접근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극도로 반발하는 '검증'을 언급한 점은 불법 핵 개발국 모두에 던지는 의미심장한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어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이란 향한 검증, 제재…北 긴장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검증된 핵 평화 협정은 이란을 평화롭게 성장하고 번영하게 할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는 또 "우리는 즉각 (검증된 핵 평화 협정에) 착수해야 하고 협정이 서명돼 완료되면 중동에서 큰 축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트럼프는 협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뜻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가 이란에 '검증'(Verification)의 잣대를 들이댄 건 북한도 면밀히 지켜볼 거란 관측이 나온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부터 미국이 북한 비핵화 원칙으로 주로 내세운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원칙 중 사찰 등을 통한 'V'(검증)는 비핵화 절차의 핵심이지만, 북한은 강하게 반발해왔다. 2018년 6·12 북·미 싱가포르 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로 목표를 설정한 것도 이를 고려한 조치였다. 그랬던 트럼프가 다시 V를 들고 나온 것이다. 

또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차단하기 위해 최대한의 경제 제재를 부과하는 각서에도 서명했다. 각서에는 이란의 돈줄인 석유 수출을 제로(0)로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 또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유엔 제재 해제와 영변 핵시설 포기를 맞바꾸려다 뼈아픈 실패를 맛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9년 2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당시 협상은 비핵화와 제재 해제 관련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결렬됐다. 연합뉴스

2019년 2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모습. 당시 협상은 비핵화와 제재 해제 관련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결렬됐다. 연합뉴스

"트럼프, 검증 포기 안 할 것"

물론 이미 핵무기 완성을 공언한 북한과 지난해 말에야 우라늄 농축도를 무기급(약 90%)에 근접한 60%까지 끌어올린 이란은 비핵화 협상의 출발점부터 다르다. 지난해 6월 스웨덴 싱크탱크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가 50기에 달하며 조립 가능한 핵탄두 수까지 고려하면 90기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인식 속에 검증을 통한 비핵화라는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바라는 '핵 군비통제'로 가든 비핵화를 비롯한 '핵 군축'으로 가든 검증 작업은 어떻게든 필요하다"며 "이란과 북한 핵 협상을 동일 선상서 볼 순 없지만 분명 시사점은 있다"고 말했다.

문제의 지역마다 "부동산 개발하자"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해 휴양지로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이른바 '가자 지구 구상'도 앞서 수차례 밝힌 북한 부동산 개발 구상과 맞닿은 지점이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20일 취임 직후 "(김정은은) 엄청난 '콘도 역량'(condo capabilities)을 보유하고 있다"며 "해안가도 많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2018년 싱가포르와 2019년 하노이에서 김정은을 직접 만나 해안가 관광 산업을 권유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북한의 경제 발전 지원을 약속하며 김정은에게 보여줬다며 공개한 약 4분짜리 영상. 영상에는 나레이션으로 “기회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는 곳, 전세계의 투자, 풍성한 자원, 이것이 현실이 될까″ 등 대사가 흘러 나왔으며 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각각 한 번씩 상영됐다. 백악관 유튜브 캡처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북한의 경제 발전 지원을 약속하며 김정은에게 보여줬다며 공개한 약 4분짜리 영상. 영상에는 나레이션으로 “기회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는 곳, 전세계의 투자, 풍성한 자원, 이것이 현실이 될까″ 등 대사가 흘러 나왔으며 한국어와 영어 버전으로 각각 한 번씩 상영됐다. 백악관 유튜브 캡처

 
이와 관련, 홍 위원은 "가자지구 구상과 북한 콘도 언급은 큰 틀에서 유사하다"며 "다만 북한에 대해선 부지 장악 등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대신 지역 개발 지원, 부동산 투자의 안정성 담보 등 정상국가화를 도와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트럼프의 당근과 채찍 전술로 미뤄 트럼프가 하노이 회담 당시 김정은에게 제시했던 '북한 핵시설 전면 공개 → 검증 가능한 비핵화 → 관광 산업을 포함한 경제 발전 보상'이라는 기준점에서 크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