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생산한 철강제품. 로이터=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10/25fe5ec5-7b92-4b89-acbd-b03b7b9b1914.jpg)
현대제철이 생산한 철강제품.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의 관세 부과를 단행한다. 세계 모든 나라에 동시에 적용되는 일종의 ‘보편관세’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치가 나왔다. 정부와 관련 기업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오는 10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1기 때인 2018년에도 세계 전 국가를 대상으로 철강(25%)·알루미늄(10%)에 ‘관세 폭탄’을 매겼다. 당시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며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했다.
당시 일본·영국·유럽연합(EU) 등 주요 대미 철강 수출국은 고관세 철퇴를 맞았지만, 한국 정부는 발 빠른 협상으로 관세 부과를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정부는 관세를 맞는 것보다 수입 물량에 제한(쿼터 적용)을 받더라도 무관세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철강 쿼터 적용으로 2015~2017년 평균 수출량(383만t)의 약 70%인 263만 t(54개 제품)이 무관세로 묶였다. 대신 그 이상 수출길이 막혔다. 2014년 한 해 동안에만 592만t에 달했던 한국 철강업체의 수출 물량은 2020년 연간 214만t까지 줄었다(한국무역협회). 쿼터는 상황에 따라 족쇄가 됐다. 미국 내 철강 수요가 증가해도 한국 기업들은 추가로 수출하지 못했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지만, 시장 점유율은 줄었다. 쿼터로 인해 공급량에 제한이 생기자 한국산 철강 제품은 오히려 미국 시장 내에서 가격 협상력이 떨어졌다. 기업의 수익성도 악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바이든 정부 시절인 2022년 일본과 EU가 저율할당관세(TRQ)를 적용하는 등 미국과 철강 관세 분쟁을 타결하면서 한국산의 입지는 더 줄었다. TRQ 적용 국가들은 일정 물량까지 무관세를 적용 받고, 이후 관세를 부과 받는 식으로 수출 물량을 늘려나갔다. 한국 정부도 재협상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협상 불가를 고집했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가 새로 발표하는 관세는 철강·알루미늄 대상 기존 관세에 추가하는 방식이다. 기존 25%의 관세가 50%로 올라가는 식이다. 다만 한국처럼 쿼터나 TRQ을 기존에 적용 받고 있는 국가에 대한 조치에 대해선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0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미국프로풋볼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이 같은 계획을 공개했다고 로이터와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사진은 10일 경기도 평택항에 쌓여 있는 철강 제품 모습. 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10/cf1f4d3b-b273-481d-a8f0-0a586a80125d.jpg)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0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미국프로풋볼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이 같은 계획을 공개했다고 로이터와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사진은 10일 경기도 평택항에 쌓여 있는 철강 제품 모습.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25% 관세 부과를 발표했고, 백악관이 (기존에 관세에) 25%를 추가하는 것까지만 언급한 상태”라며 “쿼터 유지 여부, 관세 부과 범위 등 한국과 관련한 실행 계획은 기업과 현지 공관 등을 통해 확인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악의 경우 무관세인 기존 쿼터 물량에도 관세 25%가 부과될 수 있다.
정부는 이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외교·통상 장관들이 참석한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열고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발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아울러 산업부는 박종원 통상차관보 주재로 긴급 점검 회의를 개최했다. 산업부는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업계와 긴밀히 공조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1기 때처럼 정부의 협상력이 중요해졌다. 철강업계에서는 “재협상 테이블이 차려진다면 기존 쿼터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일본이나 EU에 적용되는 (수출 물량 제한이 없는) TRQ 방식 등으로 전환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협상 자체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 기업이 국내에서 생산한 철강 제품의 대미 수출 비중은 전체의 13% 수준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포함한 철강기업들은 미국 내 공장 건설 등의 대안을 나름대로 준비 중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결국 트럼프 정부는 관세 부과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해외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더 많이 짓길 원하는 것”이라며 “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를 추진하면서 미국 내 생산 라인을 구축하려는데, 중장기적으로는 이런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생산 시설을 이전하기 쉽지 않은 국내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 있다. 당장 수출의 경우 미국 외 시장에서 더 고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중국의 공급 과잉에 따른 밀어내기 수출로 국내 철강업계가 피해를 보고 있는데, 미국 수출길이 막힌 다른 국가 기업의 물량까지 시장에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커서다.
한편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수출 흐름에 대해 “그동안 높았던 수출 증가세도 반도체를 제외한 부문을 중심으로 점차 둔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KDI는 이날 발표한 ‘경제동향 2월호’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무역 분쟁이 격화됨에 따라 수출 여건이 악화됐다”며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경기 하방 위험이 증대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KDI는 특히 “지난달 일평균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7% 늘며 완만한 증가를 지속했지만,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제외한 품목의 일평균 수출액은 1.7% 감소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