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재원 쌤, 아니 '팀 중증'을 응원하는 이유

백강혁(주지훈)과 양재원(추영우·왼쪽)은 환자의 골든아워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사진 넷플릭스]

백강혁(주지훈)과 양재원(추영우·왼쪽)은 환자의 골든아워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사진 넷플릭스]

의사 만나기 힘들어진 시대, ‘중증외상센터’에서 진짜 의사들을 만났다. 지난달 24일 공개 이후 국내 OTT 차트 왕좌를 지키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얘기다. 인기 유튜버 ‘닥터프렌즈’ 멤버인 이비인후과 전문의 이낙준의 동명 웹소설·웹툰 원작이라 디테일이 살아있다.

천재 외과 의사가 환자를 구하기 위해 난기류에서 직접 헬기를 조종하고, 급기야 기내에서 머리를 뚫는 수술까지 하는 판타지와 긴박한 현실감이 묘하게 줄타기를 한다는 게 킬링포인트. ‘아덴만 의료 영웅’ 이국종 교수를 연상시키는 주인공 백강혁 역의 주지훈이 판타지 담당이라면, 리얼리즘을 담당하는 건 좌충우돌 병원 식구들이다.

특히 외상외과 펠로우 ‘양재원 쌤’ 역 추영우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최고 시청률 13.6%를 기록한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에 이은 연타석 홈런인데, 사실 좀 반칙이다. 전작이 끝나기도 전에 숨돌릴 틈도 주지 않은 총공세라서다. 187㎝의 훤칠한 키와 태평양 어깨를 소유한 ‘문짝남’ 피지컬의 로맨티스트 ‘천승휘’로 떴으니 지난해 ‘선업튀’ 변우석 신드롬의 리바이벌인가 싶은데, 방점이 연기에 찍힌다.

1999년생 방년 25세. ‘팀 중증’의 귀여운 막내라곤 믿기지 않는 성숙한 분위기인데 역시나, 한예종 연극원 출신으로 2021년 데뷔해 ‘경찰수업’ ‘학교2021’ ‘어쩌다 전원일기’ ‘오아시스’ 등 청춘물부터 시대극까지 폭넓은 장르에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2023년 KBS 연기대상에서 이미 남자 신인상을 수상한 검증된 연기력이지만, ‘옥씨부인전’에서의 파괴력은 남달랐다.

노비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위태로운 운명의 여인 구덕이(임지연)를 사이에 둔 두 남자를 1인 2역으로 소화한 것. 서자 출신 전기수이자 순애보의 정석 천승휘는 양반가 맏아들로 베일에 싸인 차도남 성윤겸과 도플갱어처럼 닮은 설정이지만 눈빛만으로 구별되는 ‘메쏘드 연기’로 차별화됐다. 교과서적인 사극 화법을 쓰다 능청스런 현대어로 허를 찌르는 일상 연기는 한 인물의 겉과 속을 변검술에 가깝게 보여줬다. 천승휘가 바이러스처럼 퍼뜨리는 “난 최고야, 난 대단해”라는 마법의 주문은 시청자까지 전염시킬 것 같았다.


알고보니 과몰입을 유도하는 연기 내공은 먼저 촬영을 끝낸 ‘중증외상센터’를 통해 갈고닦은 것이었다. 팬들로썬 완성형 배우가 성장형으로 회귀한 모습까지 확인하게 된 셈이다. ‘중증외상센터’ 스토리라인도 양재원의 성장기에 가깝다. 명문 대학병원에서 평탄한 엘리트 코스를 밟던 항문외과 펠로우가 지방대 출신 천재 교수 백강혁에게 이끌려 가시밭길인 외상외과에 뛰어들고, 매순간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백강혁의 생명을 구할 만큼 성장하는 서사다.

‘재원쌤’의 성장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열심히 환자를 살릴수록 병원 적자가 늘어나니 인정은커녕 방해공작만 받는 중증외상센터의 모순에 혼란에 빠진다. 현실에서도 의료는 자본주의다. 최근 정부 예산 삭감으로 문닫을 위기였던 국내 유일의 중증외상전문의 수련센터가 서울시 지원으로 심폐소생하게 됐지만, 업무강도가 세니 지원자가 거의 없단다. 재원쌤도 허벅지를 숱하게 찔렀을 법 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의사’라는 직업의 간지는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 그게 재수없이 나인 거고. 그러니까 그냥 해요, 버텨봐요.” 천장미(하영) 간호사의 입을 빌어 나온 이 말은 사실 설득력이 없다. “너만의 이유를 찾아. 개같이 구르고 엿같아도 절대 변하지 않을 그런 이유. 이 퍽퍽한 길을 아무 이유없이 걷기엔 너무 되다”는 백강혁의 충고도 이유가 없다. 그저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에게 내리는 정언명령일 뿐이다.

의정 갈등 1년, 의료대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방 대학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부족으로 단축운영이 비일비재하다. 추영우 신드롬이 그저 잘생기고 연기를 잘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친 지금, 환자를 살리기 위해 눈썹을 휘날리며 병원을 뛰어다니는 재원쌤 같은 의사가 응급실에 있어주길 바래서가 아닐까.

‘귀여운 빌런’ 항문외과 과장 한유림(윤경호)을 비롯해 악덕 경영진들도 흔한 메디컬드라마의 억지 휴머니즘 대신 의료 현실과 이상을 돌아보게 한다. 병원의 만성적자 탓에 흑화했을지언정, 빌런이어봤자 결국은 사람을 살리겠다고 의사가 된 사람들이었다는 ‘찐’ 휴머니즘이 필요한 때다.

돈도 좋고 편하게 살 수도 있지만, 이왕 가지고 태어난 뛰어난 능력을 치열한 사명감으로 멋지게 발휘하는 의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우리가 재원쌤, 아니 ‘팀 중증’을 응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