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은 같지만, 각론에선 여야 이견…상속세 완화 쟁점 뭐길래?

상속세 개편을 놓고 정치권에서 다시 불이 붙었다. "세금 때문에 집 팔고 떠나지 않고 가족의 정이 서린 그 집에 머물러 살 수 있게 하겠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이 계기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16일 "그동안 상속세 논의를 피해온 게 민주당"이라며 '선거용' 발언으로 깎아내렸지만, 양당 모두 세 부담을 낮추자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각론에선 여야 입장이 다르다.

지난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부결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부결되고 있다. 뉴스1

①한국만 유독 상속세 많이 낸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30억원 초과)다. 일본(55%)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6%)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OECD 38개 회원국 중 14개국은 상속세가 없다. 최고세율은 1999년 50%로 올린 뒤 25년째 그대로다. 이 사이 물가는 2배, 1인당 국내총생산은 4배가량 상승했다. 세율이나 한도를 조절해야 했지만 ‘부자 감세’란 프레임 탓에 매번 실패했다.

그 사이 상속세를 내는 피상속인은 2005년 1816명에서 2023년 1만9944명으로 급증했다. 상속세 수입 또한 같은 기간 7020억원에서 8조5444억원으로 늘었는데, 총국세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8%로 OECD에서 가장 높다. 여야가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 완화라는 교집합(交集合)이 형성된 이유다.

②공제 한도 높이면 해결?

상속세가 ‘부자들의 전유물’에서 ‘중산층의 숙제’로 바뀐 가장 큰 원인은 집값 상승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2억7274만원이었다. 5년 전보다 대략 50% 뛰었다. 상속세엔 다양한 공제 요건이 있는데 핵심은 일괄공제(5억원)와 배우자공제(5억원)다. 합하면 10억원인데 이를 넘어서는 아파트가 너무나 많아졌다. 20억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물려받으면 대략 2억4000만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당장 세금 낼 돈이 없으면 집을 파는 수밖에 없다. 여야 모두 공제 한도를 높이자는 주장을 하는 배경이다. 민주당은 일괄공제는 8억원, 배우자공제는 10억원으로 상향하자고 주장한다. 국민의힘도 각각 10억원으로 올리는 개정안(송언석 의원)을 발의했다. 이렇게 되면 일단 아파트 한 채에 얽힌 상속세 부담은 어느 정도 줄어들 전망이다. 미국은 상속세율이 40%로 높은 편이지만 공제 한도가 약 1300만 달러(187억원) 매우 높다. 프랑스나 스위스 등은 배우자공제에 한도를 두지 않는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③최고세율 낮추면 부자만 덕 본다?

최고세율은 쟁점이다. 2023년 상속 규모 상위 1%가 납부한 상속세는 전체의 상속세의 92.3% 차지한다. 최고세율을 내리면 이들이 혜택을 보는 건 맞는 얘기다. 민주당은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 ‘초부자 감세’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고세율을 10%포인트 낮출 경우 대략 약 2조원의 세수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다만 해외 자산 유출 문제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세율이 낮거나 없는 싱가포르나 두바이엔 전 세계 부자가 몰려든다”며 “한국에 있던 돈은 빠져나가고, 외국인은 한국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글로벌 평균보다 훨씬 높은 세율을 고수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헨리앤파트너스의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 약 1200명의 한국 고액자산가(100만 달러 이상)가 해외 이주를 택했다. 규모로는 중국∙미국∙인도에 이어 4번째로 많고, 2022년(400명) 이후 증가 추세도 가파르다.

④유산세 VS 유산취득세

현재 상속세는 가족 전체가 물려받는 금액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세 방식이다. 총합에 매기니 상속세액도 커진다. 상속 비율에 따라 배분한 뒤 각각에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예컨대 자녀가 4명이고, 과세표준이 40억원일 때 누진공제를 뺀 상속세는 15억4000만원(1인당 3억8500만원)이다. 유산취득세로 바꾸면 과세표준이 1인당 10억원으로 줄면서 세율도 낮아진다. 그에 따라 총 세액은 9억6000만원(1인당 2억4000만원)으로 줄어든다. OECD에서 상속세를 내는 24개국 중 20개국은 유산취득세를 택하고 있다.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는 건 정부도 여러 차례 추진 입장을 밝혔지만, 야당은 세수 감소를 이유로 유보적이다. 

⑤일괄공제 상향 VS 자녀공제 상향

정부는 일단 현재 1인당 5000만원인 자녀공제를 5억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상속세는 ▶기초공제(2억원)와 자녀공제 등을 합한 금액 ▶일괄공제(5억원) 둘 중 큰 금액을 공제한다. 현행대로면 자녀가 무려 6명이어야 일괄공제와 금액이 같아진다. 사실상 자녀공제의 실효성이 없었던 셈이다.

자녀공제를 5억원으로 높일 경우 20억원짜리 아파트를 상속할 때 자녀가 3명(배우자가 생존한 경우)이면 상속세가 사라진다. 유산취득세 방식이 자녀가 많을수록 혜택을 보듯 자녀공제도 한도를 높이면 다자녀 가구에 유리한 셈이다. 학계에선 저출산 대응을 위해서라도 맞는 방향이란 주장에 힘이 실린다. 다만 자녀공제만 높일 경우 자녀가 없거나 적은 가구가 역차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괄공제도 함께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개정안은 최고세율 인하를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법은 내용뿐만 아니라 추진 과정도 예측 가능해야 국민이 안정감을 가지는데 시기에 따라 온탕·냉탕을 오가니 여러 의심을 받는 것”이라며 “여든 야든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 조세 정책 입안자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