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일본 홋카이도의 관문으로 불리는 신지토세 공항에서 바라본 라피더스 반도체 공장 전경. 공항과 도로 하나를 마주하고 있을 정도로 가까워 반도체 수출에 특화된 입지 구조를 갖추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라피더스 관계자는 “(2나노 양산이라는) 큰 도전을 뛰어넘자며 직원들이 똘똘 뭉쳐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피더스 직원은 655명. 대부분이 엔지니어들로 일본이 반도체 시장을 이끌었던 1980~90년에 반도체를 연구했던 베테랑 기술진이 참여하고 있다. 평균 연령대가 40대 후반에 달하지만 '모두 필사적'이다. 2022년 가을, 지토세로 공장 부지를 선정한 이래 공장 건설부터 장비 반입까지 공정은 단 한 차례도 늦어진 적이 없다. 눈이 많은 홋카이도에서 공장 기초 건설을 단 하루도 늦추지 않기 위해 폭설에도 거대 텐트를 쳐가며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이어달리기 하듯 했고, 미국 IBM에 파견된 기술진은 필사적으로 연구에 몰두했다. 지난 17일 도쿄 라피더스 본사에서 만난 관계자는 올봄 파일럿 라인을 가동해 6월 미국 브로드컴 시제품을 공급에 대해선 “공표할 사실은 지금 단계에선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2나노 반도체 양산에 대해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생각뿐이다. 안될 이유가 없다. 마일스톤을 쌓아가다 보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반도체 부활을 위해 맹추격에 나섰다. 세계 반도체 시장 패권을 되찾기 위해서다. 1980~90년대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이끌었던 일본은 빠르게 치고 올라온 한국과 대만에 뒤처졌다. 일본 정부가 잃어버린 ‘반도체 30년’을 되찾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쏟고 있는 회사가 바로 라피더스다. 2022년 고이케 아쓰요시(小池淳義) 라피더스 사장 등 개인 주주 10여 명과 토요타자동차·소니·소프트뱅크·덴소·NTT·키옥시아 등 일본 산업을 대표하는 8개 기업이 힘을 합쳤다.
일본 정부는 파격적인 R&D(연구개발) 자금 지원에 나섰다. 지금껏 투입된 정부 지원금은 9200억엔(약 8조8800억원). 2나노 양산을 위해선 약 5조엔(약 48조2200억원)이 필요한데 지난 7일 일본 정부는 자금지원이 쉽도록 라피더스 지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와는 별도로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AI(인공지능)와 반도체 분야 연구 개발과 설비 투자에 10조엔(약 96조원)을 투입하기로 하는 등 반도체 부활에 사활을 걸었다. 중국에 2년 만에 반도체 기술을 따라 잡힌 상황에서도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적용안이 담긴 반도체법조차 무산된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12일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에 건설 중인 라피더스의 반도체 공장. 오후 3시가 지난 시간이지만 직원들이 공사 전용 사무소를 지나 출근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라틴어로 ‘빠르다’는 의미를 담은 사명처럼 라피더스는 삼성전자·TSMC와 다르게 반도체 제조에 걸리는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RUMS(Rapid and Unified Manufacturing Service)’ 를 강조했다. 전공정과 후공정, 설계 솔루션에 이르는 전 과정을 연계해 반도체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을 기존의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AI 분야 수요가 매우 높아지면서 전용 칩을 빨리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빠른 피드백이 가능한 서비스의 경쟁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규모로 웨이퍼를 가공하는 삼성전자 등과는 다르게 한 번에 하나의 웨이퍼만 정밀하게 제어하는 싱글 웨이퍼 가공 방식(Single Wafer Processing)을 통해 AI 시대에 맞춘 고성능 저전력 칩을 ‘맞춤형 생산(다품종 소량생산)’하겠다는 계획도 소개했다. 소프트뱅크가 미국에서 추진하는 대형 AI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만이 아니라 여러 AI 스타트업에도 빠르게 적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보탰다. 대형 고객을 선점한 경쟁사와는 달리 틈새시장을 ‘속도’로 공략하겠다는 계산이다. 이에 대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소재와 장비 분야에서 장점을 가진 일본의 특성을 모두 동원해 속도전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일본 반도체 부흥의 자신감을 표출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라피더스 지토세 공장. 최대 4000명의 건설 인력이 투입된 이 곳에서는 최첨단 반도체인 2나노 시범 생산을 위한 장비 반입이 이뤄지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