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같은 고질병, 불안-최지은 메타 전무 인터뷰

설 연휴 때인 지난달 27일 부모님 만나러 잠시 한국에 온 최지은 메타 아태본부 전무를 서울 부영빌딩에서 만났다.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고 했다. 김현동 기자
가족력은 없었다. 오히려 건강엔 자신 있었다. 그런데 암이라니. 무방비로 삶에 배신당한 후 삶의 모든 가치가 무너져 내렸다. 세상이 시속 100㎞라면 늘 120㎞로 숨 가쁘게 달리며 세상을 앞질러왔는데, 세상 속도에 뒤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궤도 이탈로 정차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항암 치료받으며 경제지를 더 많이 구독하고, 커리어 플랫폼 '링크드인' 이력서를 계속 업데이트했다.
120km로 과속하다 궤도 이탈
주위의 응원·감사가 때론 폭력
날 일으킨 건 피자 한 판의 위로
이후 이력서 아닌 부고에 집중
삶이 배신할수록 현재를 살아라
주위의 응원·감사가 때론 폭력
날 일으킨 건 피자 한 판의 위로
이후 이력서 아닌 부고에 집중
삶이 배신할수록 현재를 살아라
![10년 연애 끝에 지난 2019년 인도에서 올린 결혼식. [사진 최지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26/295c261e-cc0c-44da-aff1-b0d882c794c8.jpg)
10년 연애 끝에 지난 2019년 인도에서 올린 결혼식. [사진 최지은]
진짜 죽음
분노와 함께 한동안 현실부정이 이어졌다. 내려놓지 못하고 거꾸로 집착이 더 심해졌다. 전처럼 회사에서 인정받고 승진하고 싶었다. 방사선 45 일만 하면, 항암 8주만 더하면, 이런 식으로 치료 끝나는 날짜만 세면서 삶을 사는 대신 계속 삶을 유예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내 세계로 돌아갈 거라 기대했는데, 항암과 방사선을 섞은 표준치료 후 암이 오히려 양쪽 폐로 전이됐다. 4기. 의사는 9개월을 얘기했다.
집에 돌아와 선물 받은 10여 권의 투병기를 전부 꺼냈다. 저자 중에 살아있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화가 나 당장 내다 버렸다. 그렇게 절망 속에 일상이 무너졌다. 죽을 거라 생각하니 밥 먹고 이 닦고, 화장실 가고, 이 모든 게 무의미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싫었다. 죽음이 싫고 두렵다는 이유로 결국 죽음밖에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이 돼가고 있었다. 죽음은 나를 한 번만 죽일 수 있는데, 두려움은 나를 수천수만 번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
![4기 진단 후 새로운 항암치료로 머리가 우수수 빠지자 최지은 전무 남편(왼쪽)은 같이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밀었다. [사진 최지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26/04995e5b-aaff-4244-82cb-f5879da3a7d9.jpg)
4기 진단 후 새로운 항암치료로 머리가 우수수 빠지자 최지은 전무 남편(왼쪽)은 같이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밀었다. [사진 최지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암이 왜 생겼는지 몰라도 어떻게 반응할지는 내 선택이었다. 삶을 유예만 해온 지난 5~6개월이 아까웠다. 오랜만에 친구들한테 연락했다. "나 9개월밖에 못 산대. 너 언제 시간 돼?" 스테로이드 탓에 얼굴은 여드름투성이고 체중은 10㎏ 불었는데, 여드름 없어지고 살 빠질 때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거울 앞에 서서 큰 사이즈 옷을 샀다. 현재를 살자, 오직 이 마음이었다.
진짜 위로
엄마는 원래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은행 다니던 아빠 따라간 룩셈부르크 국제학교 시절 엄마가 싸주는 참기름 냄새나는 김밥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좋든 싫든 연구하고 연습하며 외국 친구도 좋아할 김밥을 기어이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암 소식을 듣자마자 퉁퉁 부은 눈으로 싱가포르로 날아왔고, 우린 계속 부딪혔다. 엄마는 이 안 닦고 샤워 안 하는 내게 화를 냈다. 나 역시 헛된 희망을 품는 엄마 보기가 가슴 아파 괜히 역정을 냈다.
![지난 2022년 암 발병 소식을 듣고 싱가포르로 날아온 부모님과 함께. [사진 최지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26/cf9e7b85-ed13-4be8-9b81-3b23da160832.jpg)
지난 2022년 암 발병 소식을 듣고 싱가포르로 날아온 부모님과 함께. [사진 최지은]
남편도 마찬가지다. 침대 위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출근하는 심정이 어땠을지 그땐 헤아리지 못했다. 암 판정 후 남편은 힘든 내색을 안 했다. 어느 날 잠깐 산책하러 나간다는 그를 집 창문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그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온몸을 떨며 목 놓아 울었다. 한참 뒤 웃으며 돌아왔고, 난 모른척했다. 4기 항암 치료로 내 머리가 우수수 빠지자 우린 미용실에 같이 가 시원하게 머리를 밀었다.
암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뿐 아니라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필요로 했다. 분노했다가 절망했다가 슬펐다가. 주위 사람을 널뛰는 이 미친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익명으로 트위터(X)에 내 얘기를 했고, 같이 웃고 화내고 슬퍼하며 정말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닥 친하지 않았던 독일인 직장 동료도 생각난다. 그가 피자 한 판을 보내왔다. “아프다고 들었어요.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끼니 챙기기 어려울 거 같아서요. 싫으면 부담 없이 버려요. ” 대부분 묻는 거로 끝나지만 이 사람은 서툴지언정 늘 행동이 먼저였다. 항암 후 처음 먹은 피자는 까무러칠 정도로 맛있었다.
진짜 삶
![지난 2016년 투자은행 JP모건에서 인수합병(M&A)과 상장(IPO) 업무를 하던 월가 시절 동료들과 함께한 최지은(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 최지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26/3ea48db5-8621-4935-9f3a-bcff2b02cb4a.jpg)
지난 2016년 투자은행 JP모건에서 인수합병(M&A)과 상장(IPO) 업무를 하던 월가 시절 동료들과 함께한 최지은(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 최지은]
막상 죽음의 병상 위에 누워보니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려고 아등바등 이뤄낸 매출이나 빠른 승진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후배에게 용기를 북돋워 연설을 도왔을 때처럼 이력서엔 도움 안 되는 순간만 기억났다. 맞다. 결과 아닌 과정, 그게 삶이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에 집중하며 매 순간 살아가기로 했다. 이력서보다 부고에 집중하는 삶, 다들 이렇게 현재를 살았으면 좋겠다.
![지난 2018년 메타(페이스북) 싱가포르 아태본사에서 발표하는 모습. [사진 최지은]](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2/26/4f27fa6d-1ddb-44d2-9e24-e6bd7a8e9455.jpg)
지난 2018년 메타(페이스북) 싱가포르 아태본사에서 발표하는 모습. [사진 최지은]
마지막으로, 응원·감사 이런 좋은 단어가 때론 얼마나 폭력적인지 말하고 싶다. 병 소식이 알려지자 숱한 응원이 쏟아졌다. "넌 강하니까 이겨낼 거야. " 위로지만 환자들에겐 상처다. 강하지 못해 암을 극복 못 하고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니다.
"감사할 걸 찾아보라"는 제안도 똑같다.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느냐, 회사 복지가 좋아 치료비 걱정 안 하지 않느냐. 하지만 감사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세상의 감사 강요가 집요해질수록 배은망덕한 사람만 됐다. 차라리 충분히 분노하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충분히 분노해야 진짜 삶이 보이니까.

안혜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