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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사인한 트럼프 미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부과의 타깃으로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구리를 지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 시간) 미국의 구리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근거는 철강·알루미늄 제품 관세 부과 때처럼,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다. 실제 구리는 미국 무기 체계에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재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기반인 쇠락한 동북부 공업지대 ‘러스트벨트’ 유권자를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집약적인 금속 수입제품에 관세를 부과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외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창출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구리는 미국에서 만들어져야 하며, 예외도 면제도 없다”고 설명했다.
향후 미국 내 구리 소비 확대를 예상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약 170억 달러 규모의 구리를 소비했으며 이 가운데 45% 가량을 수입했다. 문제는 미국 내 구리 생산량이 감소 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약 110t의 구리를 채굴했는데, 이는 10년 전보다 약 20% 감소한 규모다. 향후 전기차·인공지능 등 수요를 고려하면 미국의 구리 수입의존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구리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수입 다변화와 미국 내 생산 공장 유치 등으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캐나다·멕시코에 대한 추가 압박카드가 될 수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은 세계 구리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초과생산과 덤핑을 하고 있다”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고문의 발언을 인용해 이번 조치가 중국을 타깃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구리 관세가 부과된다면 칠레·캐나다·멕시코 등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 국제무역청에 따르면 미국에서 쓰는 구리의 최대 공급자는 칠레이며, 그 다음이 캐나다와 멕시코다.
한국도 이 조치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 지난해 구리 제품 5억7000만 달러 규모를 미국에 수출했다.(무역협회) 고려아연·풍산·LS그룹(LS MnM) 등 구리를 수입해와 제련·가공해 수출하는 기업들이 직접 영향권이다. 다만 미국 시장 점유율이 높지는 않다. 무협 관계자는 “전체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동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5% 정도”라며 “한국이 가장 많이 수출하는 정제구리와 구리 합금 등은 대미 수출 비중이 0.0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의 관세 조치로 구리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면 안정적인 구리 수급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실제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지난 25일 구리 가격은 t당 9463.0달러로, 연초(8685.5달러)보다 약 9%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