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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토 모레노 빙하(Perito Moreno Glacier)를 누비는 일명 ‘빅 아이스 투어’.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도사리고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10년째 신혼여행㉒ 파타고니아
아내의 여행

거친 바람의 땅 푼타 아레나스. 형형색색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다. 저 중 하나가 우리 숙소였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그래도 집을 나서면 마냥 행복했다. 나는 파타고니아 햇살이 이끌고 다니는 따스한 기운을 특히 좋아했다. 파타고니아에서만 서식하는 동식물, 거대한 빙하, 산맥, 호수, 초원 등 다양한 경관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출렁거렸다.

칠레 마그달레나섬에 모여 사는 마젤란 펭귄. 관광객은 2m 이상 거리를 둬야 한다. 만지는 것도 금지돼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어렵사리 섬에 들긴 했는데, 함부로 섬의 주인에게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그 작고 오동통한 펭귄 엉덩이를 만지려고 할 때마다 종민이 내 팔을 가로막았다. ‘펭귄과 2m 이상 거리 두기 규정’이 내게는 몹시 가혹했다. 마젤란 펭귄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고, 그래서 더 고귀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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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자랑, ‘뿔처럼 솟아 있는 세 개의 봉우리’란 뜻의 토레스 델 파이네. 흐린 날이 많아 완벽한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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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남편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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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일 가운데 자리 잡은 쿠에르노스 산장(Refugio Cuernos). 중간 보급기지 역할을 하는 장소다. 노르덴스콜드 호수 (Nordenskjold Lake)를 끼고 있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이유가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여행자들이 2011년 숲에서 캠핑하다 170㎢(약 500만 평) 달하는 땅을 태워 버리고 만 것이다. 바람의 땅에서 화마는 삽시간에 퍼졌다. 1300만 년 전부터 형성된 땅과 숲이 그렇게 속절없이 검은 재가 됐고, 칠레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스라엘 여행자에게 장비를 빌려주지 않는 가게가 많았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내어줄 침대는 없다’는 경고문이 붙은 게스트하우스도 있었다.
한국에서 온 우리는 별 탈 없이 트레킹에 나설 수 있었다. 온갖 먹을 거, 마실 거를 들춰 메고 ‘W 트렉’라 불리는 71㎞ 길이의 트레일을 나흘간 걸었다. 화마의 흔적이 여전했지만, 대자연의 매력 또한 컸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우주선을 숨겨야 한다면, 이만큼 좋은 은신처도 없겠구나 싶었다. 단 한 번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한 원시림과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바다처럼 너른 호수, 이물질 하나 섞이지 않은 푸른 하늘 모두 태고의 신비를 담고 있는 듯했다. 길을 걸으며 영혼이 흔들릴 만큼 황홀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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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토 모레노 빙하 위를 걷는 투어 가이드. '빅 아이스 투어'는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비싼 투어 프로그램 중 하나다. 사진 김은덕, 백종민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빙하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폭탄이 터지고 수만 명이 울부짖는 듯한 굉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크레바스를 건넌 뒤 빙하가 녹은 웅덩이에 손을 담가봤다. 손가락 끝부터 얼음이 되어 버릴 만큼 차가웠다. 가이드가 옆에 오더니 ‘갈라진 틈으로 빠지면 빙하와 함께 영원히 잠들 수 있으니 조심해’라고 겁을 줬다. 위스키에 빙하 조각을 띄운 ‘온 더 락’을 마시며 투어를 마무리했다. 잔뜩 얼어붙었던 몸이 순간 후끈 달아올랐다.
빅 아이스 투어는 비싸다. 2014년에는 투어 비용이 우리 돈으로 약 12만원이었는데 현재는 60만원까지 치솟았다. 빙하가 녹는 속도만큼이나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역시 파타고니아는 주저하지 않고 빨리 다녀온 사람이 승자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파타고니아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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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노 호수 옆에 위치한 엘 칼라파테 공항. 사진 김은덕, 백종민
날씨 : 여름 추천(11~3월)
언어 : 스페인어
물가 : 식비는 한국과 비슷하나 투어 상품은 매우 비싼 편이다.
부부 여행작가 김은덕, 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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