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도 돈 안빌려줘"…불법사금융 피해 '역대 최고'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시내에 부착된 대출 관련 광고물.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시내에 부착된 대출 관련 광고물. 연합뉴스

 

주부 이모(51)씨는 남편이 실직하면서 은행 대출 상환이 어려워지자 2금융권에 이어 대부업체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은행 대출 연체를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씨는 결국 불법사금융을 통해 200만원을 빌렸다. 하루 4만원이었던 이자는 연체로 원리금이 600만원까지 불어나면서 2년 만에 하루 12만원으로 늘었다. 그는 “불법사금융을 처음부터 이용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돈을 빌려주는 곳이 그곳뿐이었다”고 토로했다.

신용도가 낮은 서민이 돈을 빌릴 수 있는 창구가 사라지면서 불법사금융 피해가 늘고 있다.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접수된 상담‧신고 건수는 1만5397건으로, 전년도(1만3751건)보다 11.9% 늘면서 역대 최고였다. 상담·신고 건수는 2020년 8043건을 기록한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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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빌려주는 대부업체

2021년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지면서 불법사금융 시장이 커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제도권 금융회사가 돈을 빌려주지 않다 보니 수백 %에 달하는 이자를 내서라도 급전을 빌리려는 수요가 늘었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말 등록 대부업체의 대출잔액은 12조2105억원으로, 2019년 상반기(16조6740억원)보다 27.8% 줄었다. 이 기간 대부업 이용자는 200만7000명에서 71만4000명으로 급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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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업 대출은 신용대출과 담보대출로 구분되는데 대출잔액 중 신용대출 비중은 2021년 48.1%로 처음 절반 이하로 떨어진 이후 꾸준히 줄고 있다. 익명을 원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대부업은 저신용자에 대한 긴급대출이 핵심이지만, 대출 여력이 떨어지다 보니 주로 담보대출만 취급하고 있다”며 “당장 100만원이 급한 사람도 집과 같은 담보가 있어야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2금융권의 문턱이 낮다지만, 저신용자에겐 언감생심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중금리 신용대출을 취급한 32개 저축은행 중 신용점수가 400점을 밑도는 차주에게 대출을 내준 건 7곳뿐이다. 그마저도 대출액은 미미하다.

대부업 대출 문턱이 높아진 건 대부업체마저 돈 빌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말 대부업체의 평균 차입 금리는 7.5%를 기록했다. 2021년 5.2%에서 매년 상승세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연체율을 고려한 대손비용이 약 14%인데 7% 이자로 자금을 조달한다고 해도 21%로 최고금리(20%)를 넘는다”며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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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대책도 유명무실

조달비용이 높아지면서 대부업체의 차입금(자금 조달) 규모는 꾸준히 줄고 있다. 금융당국은 우수 대부업체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했지만, 실적은 저조하다. 은행이 평판 관리 등을 이유로 대부업 대출에 소극적이다 보니 대부업체는 여전히 2금융권이나 사모사채 등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우수 대부업체의 은행 차입액은 지난해 상반기 1530억원으로 전체 차입액(7조5617억원)의 2%에 그쳤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진 이후 대부업 대출이 급감하고, 불법사금융 시장은 커졌다”며 “은행이나 2금융권이 저신용자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부업이라도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데 불가능한 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권별로 대출 최고금리를 자율로 정하도록 하고, 대부업체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