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정부·의협 잠잠, 의대 교수만 분주…'응답하라 2026'

개강을 하루 앞둔 3일 대전의 한 의과대학 캠퍼스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개강을 하루 앞둔 3일 대전의 한 의과대학 캠퍼스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데엔 나흘이 걸리지 않았다. 의·정갈등 상황을 잘 아는 의료계 관계자 이야기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한의사협회 측에 비공식적으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동결 의사를 밝혔다는 중앙일보 보도가 나온 지난달 26일, 이 관계자는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 같으니 지켜보자"고 기대를 표했다. 하지만 2일 그의 목소리엔 실망이 가득했다. "의협 강경파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전까진 뭘 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

1년을 넘긴 의정갈등을 풀 현실적 대안으로 '내년 정원 3058명 동결'이 급부상했다. 하지만 의·정 모두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협의한 적 없다"고 비토를 놨다. 교육부도 "원점 검토"로 후퇴했다. '(탄핵심판 중인) 한덕수 총리가 (탄핵 기각으로) 돌아오게 되면 증원 기조가 강해질 것'이란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전국 상당수 의대가 개강한 4일 새 학기 수업을 시작한 대전의 한 의대 실습실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전국 상당수 의대가 개강한 4일 새 학기 수업을 시작한 대전의 한 의대 실습실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의협은 이렇다 할 입장 없이 침묵만 지킨다. 정부와 의협의 추가 논의 자리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게 '골든타임'이라던 2월이 끝나고, 학생 없는 3월 의대 개강을 맞았다. 내년 정원 조정 시한은 4월 말. 한 달 남짓 남았다.

협상 주체들이 잠잠한 사이, 제일 답답한 건 제자들이 돌아오지 않는 의대 교수들이다. 이들은 자체 대안 찾기에 분주하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지난달 24일 '내년 정원 3058명 복귀' 제안으로 물꼬를 텄다. 이를 받아 대한의학회 등 한국의학교육협의회 8개 단체가 정원 동결 등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3일엔 KAMC가 학생들에게 "정부를 설득할 테니 학교로 돌아와 달라"고 호소하는 서신도 보냈다. 박훈기(한양대 의대 학장) 한국의학교육학회장은 "'디데이'라던 2월 말이 지나가 버려 다들 마음이 급하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법안 참고 자료가 놓여져 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 법안 참고 자료가 놓여져 있다. 뉴스1

치킨게임을 이어가는 정부·의협 모두 양보 없으면 '제로섬'이 될 게 뻔하다는 걸 안다. 정부가 "제로베이스 논의"만 고수하다 4월 말을 넘기면 자동 증원 수순에 들어간다. 그러면 대규모 휴학, 전공의 미복귀 사태가 2년째 이어지면서 흔들리는 의료 체계의 파국이 불가피하다.

의협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 정책에 거부만 반복하다가 지난달 27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수급추계위원회 법안처럼 사실상 '패싱' 당할 수 있다. 국회 관계자는 "의협이 정부가 대폭 양보한 방안도 안 받으니까 오히려 총장에 정원 조정 자율권을 주는 등 기존 안에 가깝게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박단 의협 부회장(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은 대안 제시보다 SNS로 정부·국회 비판에 열을 올린다.

그래서 의대 교수들처럼 "이젠 대화하자"는 내부 목소리가 갈수록 커진다. 한 빅5 병원 사직 전공의는 "3058명으로 동결되면 전공의들도 돌아갈 기류가 있다. '의협이 (동결) 결정을 해라' 이렇게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정부 관계자도 "가만히 있으면 되겠나. 어떻게든 정원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혼란한 탄핵 정국에 더 늦으면 협상하고 싶어도 할 시간이 없다. 정부도, 의협도 이런 요청에 응답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