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자 애리얼리가 본 한국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표 도둑질을 멈춰라)” 팻말을 들고 있다. [뉴스1]](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3/07/32ecc715-8ff1-4b04-9f54-a877c0f9bd4c.jpg)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표 도둑질을 멈춰라)” 팻말을 들고 있다. [뉴스1]
댄 애리얼리(58) 미국 듀크대 교수는 지난달 23일 중앙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애리얼리 교수는 인간의 비이성을 파헤친 책 『상식 밖의 경제학』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행동경제학자다. 잘못된 믿음에 빠져들게 되는 원인을 분석한 그의 책 『미스빌리프(misbelief·잘못된 믿음)』는 최근 한국에서 자주 거론됐다. 12·3 계엄 사태의 여파로 부정선거론·음모론이 확산되면서다. 애리얼리 교수는 “(한국) 뉴스를 읽었고 (한국 상황에) 매우 슬프다”고 했다.
한국에선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 부정선거론이 퍼졌다. 부정선거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상당수 가짜뉴스로 판명돼 음모론이란 평가도 나오는데.
“나는 음모론보다는 잘못된 믿음이라고 말한다. 음모론은 비하하는 말이다. 잘못된 믿음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믿고, 다른 모든 것을 색칠하는 렌즈로 삼는 거다. 증거가 없는데도 윤 대통령과 관련된 정보를 아주 쉽게 믿는다면 이는 그를 지지하고 싶다는 신호다. 이게 과연 진실인지, 아니면 충성심에 관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팻말은 2020년 11월 펜실베이니아주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도 들고 있었다. [AFP=연합뉴스]](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03/07/50c7c1e0-bf2d-4a7e-99d0-aadeb9d5e7d4.jpg)
이런 팻말은 2020년 11월 펜실베이니아주 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도 들고 있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외쳤던 구호,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표 도둑질을 멈춰라)”이 한국 집회에서도 나온다. 미국 내 부정선거론에 대한 인식은.
“모든 조사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미국의 보수 성향 방송) 폭스뉴스는 트럼프가 당시 선거에서 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겼다고 주장했다는 게 소송에서 드러났다. (※2020년 미 대선 투·개표기 조작 가능성을 보도했던 폭스뉴스는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투·개표기 업체에 7억8750만 달러(약 1조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소송을 종료하기로 2023년 합의했다. 또 다른 개표 시스템 업체가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은 진행 중이다.) 트럼프는 여전히 부정선거를 말하고, 그의 지지자들은 믿는다. 매우 나쁜 상황이다. 선거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믿음이 줄어서다.”

댄 애리얼리
한국에선 2012년 대선 땐 우파가 아닌 좌파에서 부정선거론을 제기했는데.
“잘못된 믿음은 좌·우파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 자신의 그룹을 찾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문제에 취약하다.”
저서에서 음모론에 쉽게 빠지는 사람의 특징으로 패턴을 열심히 찾는 사람, 직관에 의존하는 사람, 지적 겸손 수준이 낮은 사람, 나르시시스트를 제시했는데.
“나는 대중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잘못된 믿음이나 음모론 같은 다른 설명을 찾는다고 생각한다. 폭력이 빈번한 사회일수록 코로나19 음모론에 대한 믿음이 높은 것도 그래서다. 잘못된 믿음에 빠지는 과정엔 감정·인지·성격·사회적 요소가 영향을 미친다. 지식인도 그런 길에 빠질 수 있다.”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을 무시하기보다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했는데.
“스트레스를 줄이고, 지적 겸손을 교육하고, 소셜미디어를 바꿔야 한다. 선거 신뢰도를 높일 필요도 있다. 중국 정부의 선거 개입을 믿는 이들이 있다면 개입을 차단하는 예방 시스템이 있음을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보여줘야 한다. 한국 사회가 분열돼 정체성 문제가 되는 지점에 도달했다면, 정말 힘들다. 미국에서도 친트럼프냐 반(反)트럼프냐가 정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가 되고 있다. 끔찍한 방향이다.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빨리 고치기 바란다.”
◆댄 애리얼리 교수=“인간은 비합리적이지만 그 행동 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는 주장을 기발한 실험들로 입증해 왔다. 듀크대에서 행동경제학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