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조 굴리는 美 큰손 "韓증시, 탄핵 여파 이미 반영 됐다"

앤더스 퍼슨 누빈자산운용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왼쪽)와 다니엘 클로즈 지방채 총괄이 머니랩과 인터뷰하고 있다. 배정원 기자

앤더스 퍼슨 누빈자산운용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왼쪽)와 다니엘 클로즈 지방채 총괄이 머니랩과 인터뷰하고 있다. 배정원 기자

지난해 내내 부진했던 국내 증시는 올 들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코스피를 둘러싼 악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격적인 관세 부과 정책. 둘째, 중국의 인공지능(AI) ‘딥시크’ 등장으로 불거진 AI 주도주 교체 가능성으로 인한 변동성. 셋째,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 어느 것 하나 뚜렷이 예측하거나 단기간에 풀어내기 어렵다. 많은 전문가가 2025년 증시를 ‘상저하고(上低下高)’로 전망했듯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국내 시장의 변동성이 클 거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월스트리트(월가)는 트럼프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영향이 가장 빠르게, 시시각각 반영되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다. 월가의 해외 투자자들은 올해 미국과 한국 증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뉴욕 현지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누빈자산운용(Nuveen)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2025년 물가상승률을 약 0.3%포인트 끌어올리며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경제 경착륙이나 경기침체를 부를 정도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최근 변동성이 커진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주가와 관련해서도 “시장의 과잉 반잉이다. 딥시크와 같은 소규모 혁신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AI 비용 절감과 산업 전반의 효율성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빈은 미국 교직원연금기금(TIAA) 산하 기관으로, 운용 자산만 1700조원(2024년 말 기준)이 넘는 세계 15대 자산운용사 중 하나다. 특히 인프라·부동산·실물자산 등 대체투자와 채권 부문 ‘큰손’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자산도 약 1조5000억원 규모로 운용 중이다. 다음은 누빈자산운용 앤더슨 퍼슨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와 다니엘 클로즈 지방채 총괄과의 인터뷰.

앤더스 퍼슨 누빈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에서 주장했던 것보다는 현실적인 관세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정원 기자

앤더스 퍼슨 누빈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에서 주장했던 것보다는 현실적인 관세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정원 기자

트럼프발 관세가 본격화하고 있다.  
다니엘 클로즈 지방채 총괄 : 글로벌 무역전쟁은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건이다. 현재 기준으로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2025년 근원 개인소비지출(Core PCE) 물가상승률을 약 0.3%P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관세 공세가 예상보다 강력할 경우 물가상승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앤더슨 퍼슨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 : 주목해야 할 변수가 또 있다. 바로 미국이 무역전쟁의 타격을 보완하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쓰는 상황이다. 미국 국채 발행량이 늘어나면 채권 시장에서 채권 금리를 상승(채권 가격 하락)시킬 수 있다. 다만 아직은 트럼프의 관세 영향을 완전히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각국의 반응도 중요하다.  


다니엘 클로즈 누빈 지방채 총괄은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으로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다소 하락할 수 있지만,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배정원 기자

다니엘 클로즈 누빈 지방채 총괄은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으로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다소 하락할 수 있지만,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배정원 기자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퍼슨 : 정치적 사건들은 시장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로 발생한 잡음은 이미 어느 정도는 시장 가격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동안 한국 국채(KTB) 수익률 곡선이 더 급격하게 우상향할 수 있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글로벌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 한국 경제의 중국 경제와의 밀접한 연계성도 영향을 미친다. 결론적으로 현재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은 장기적으론 경제와 금융 시장의 구조적 요인들에 따라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한국이 올해 11월 세계국채지수(WGBI·World Government Bond Index)에 편입되면 글로벌 채권 투자자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다. 자산 리밸런싱(재배분) 관점에서 많은 투자금이 들어올 수 있다. 

클로즈 : 한국은행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신규 채권 발행 규모가 크게 증가할 걸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2025년 한국 국채(KTB) 발행량이 약 30% 증가할 것으로 보이며, 공급 압력이 채권 시장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분간 한국 국채 수익률은 상승세가 이어질 거고, 더 나은 진입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올해 하반기에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안정성이 확보되면 투자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앤더스 퍼슨 누빈자산운용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왼쪽)와 다니엘 클로즈 지방채 총괄이 머니랩과 인터뷰하고 있다. 배정원 기자

앤더스 퍼슨 누빈자산운용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왼쪽)와 다니엘 클로즈 지방채 총괄이 머니랩과 인터뷰하고 있다. 배정원 기자

중국 AI 기업 딥시크의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나.  
퍼슨 : 중국 신생 기업 딥시크의 등장은 글로벌 IT(정보기술) 업계와 금융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으로 시장의 혼란을 가져왔을 뿐이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딥시크와 같은 소규모 혁신 기업들의 등장은 AI 비용을 낮추고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퍼슨 : 반면 딥시크의 등장이 지금의 (부진한) 중국 경제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 중국 경제가 다시 성장하려면 새로운 추가 경기 부양책과 미국 관세의 완화가 필요하다. 올해 중국 GDP 성장률은 5%를 넘기지 못하고 약 4.3%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주된 근거는 부동산 침체와 소비 둔화, 미·중 무역 갈등 등의 요인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높은 관세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은 중국 경제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향방은.
클로즈 : 올해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두 차례 추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해 최종 금리는 3.75~4.00%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첫 번째 기준금리 인하는 2025년 7월 30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결정될 거라 예상한다. 물론 당분간은 미국 기준금리가 동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미국의 물가는 여전히 끈적거리는(sticky·쉽게 낮아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 유지) 특성을 보이며 느리게 하락하고 있다.

퍼슨 : 미국 실업률은 현재 약 4.1% 수준으로, 이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데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이다. 핵심 변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 확대 기조다. 이런 정책들과 앞으로 나올 경제지표가 올해 기준금리 인하가 한 번일지, 두 번일지 결정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1월 발표된 비농업 고용 보고서는 예상보다 긍정적으로 나왔지만, 장기적으로 경제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