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부유해지자" 민간기업 띄우는 시진핑…현실은 반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엔비디아 발언이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한 인터넷 채널에 출연해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생겼다면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 안 내도 된다"는 발언을 했다가 여권 정치인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대선 잠룡 중 한 명인 유승민 전 의원은 "엔비디아 같은 회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방법은 어디에도 없고, 그런 상상 속의 회사가 있다고 가정하고 뜯어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낳고 기를 생각은 않고 배를 가를 생각부터 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표는 '친중 인사'라는 딱지도 붙어 있다. 대한민국 의전 서열 8위인 제1야당 대표가 외교부 국장급인 중국 대사를 찾아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다가 나중에 후회한다'는 협박성 발언을 듣고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고,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 같은 가벼운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미국 엔비디아의 창업자인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미국 엔비디아의 창업자인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이재명이 엔비디아 발언처럼 대놓고 과거 사라진 공산국가 모델을 제안하는 가운데 그가 추종하는 중국 권부의 방향성은 반대로 향하는 분위기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지난달 17일 민영기업좌담회에서 "먼저 부유해진 뒤 공동의 부유를 촉진하자"(先富促共富)는 발언이 내외신의 화제를 낳고 있다. 이 자리엔 알리바바·화웨이·BYD·웨이얼반도체·딥시크·유니트리 등 민간 부문의 거물과 스타들이 참석했다.

'선부'(先富·먼저 부유해지자)라는 단어는 13년째 집권 중인 시진핑의 '사전'에 없었다. '선부론'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주도하며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당시 중국은 비약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그 부작용으로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성장에서 소외된 서민들은 덩샤오핑 이전 마오쩌둥 집권 시기를 동경하기에 이르렀다.

시진핑은 이런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선부론 대신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설파했다. 공동부유론은 시진핑 장기 집권 체제에서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지향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런 기조 아래 추진된 '국진민퇴(國進民退·민간기업이 물러나고 국유기업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 정책도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인터넷 산업의 성장세를 타고 급팽창한 알리바바 같은 기업조차 공산당의 눈치를 보고 정부 정책에 대해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2020년 10월 중국 정부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규제를 비판했다가 4년간이나 은둔 생활을 했다. 기업 상장도 물거품이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월 17일 민영기업 좌담회에 참석한 기업 책임자들과 친밀하게 교류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월 17일 민영기업 좌담회에 참석한 기업 책임자들과 친밀하게 교류하고 있다.

그랬던 마윈이 이번 민영기업 좌담회에 등장했다. 드디어 그가 중국 정부로부터 복권됐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르몽드 영문판은 "딥시크의 부상과 좌담회에서 보여준 시 주석의 달라진 태도는 (중국의) 매우 중요한 순간에 찾아왔다"고 해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좌담회는 중국에서 정치적 바람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중국 정부의 기조 변화는 새로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한 대응,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발전한 중국의 경쟁력이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 1월 저비용·고효율 인공지능(AI) 모델인 딥시크가 돌풍을 일으켰다. 자신감을 얻은 중국 정부는 '트럼프 관세 폭탄' 등 외부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난 5일 양회(兩會)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작년, 재작년과 동일한 '5% 안팎'으로 뚝심 있게 설정했다. 이와 함께 미국에 대응해 '기술 자립'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달리 민간 기업들에 강하게 힘을 실어주는 그림이다.

현재 중국은 첨단과학 연구분야에서 미국을 제쳤다는 평가를 있따라 받고 있다. 딥시크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라는 왕좌를 테슬라에게서 빼앗은 BYD, 화려한 군무로 중국 14억 인구를 놀라게 한 휴머노이드 로봇 군단을 만든 유니트리 등이 당장 눈에 띄는 민간 분야 성과다.

연구 분야에서도 중국의 성과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미국 조지타운대 '신흥 기술 관찰 프로젝트(ETO)'가 지난 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3년 전 세계적으로 약 47만5000편의 반도체 설계·제조 관련 논문이 발표됐는데, 이 중 34%에 중국 기관 소속 저자가 참여했다고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미국 저자가 포함된 논문은 15%, 유럽 연구자가 포함된 논문은 18%였다.

'쭈충즈(祖沖之) 3호' 개략도.

'쭈충즈(祖沖之) 3호' 개략도.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도 중국은 괄목할 만했다. 중국 과학기술대 연구팀은 기존의 가장 강력한 슈퍼컴퓨터보다 1천조 배 빠른 105큐비트(Qubit) 초전도 양자컴퓨터 프로토타입(시제품)인 '쭈충즈(祖沖之) 3호'를 최근 공개했다.

이런 성과의 주인공들이 중국 토종 인재들이라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딥시크 개발 주역들은 아예 유학생이 아닌 본토 출신들이었다. 창업자 량원펑은 유학파도 아니고, 베이징·칭화대 등 일류대 출신도 아님에도 만 40세의 나이에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성공 신화'를 썼다.

취업하기 위해 귀국한 중국인 유학생 수도 늘어났고, 졸업하자마자 귀국을 택한 경우가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중국의 구인·구직 플랫폼 즈롄자오핀에서 발표한 '2024 중국 귀국 유학생 취업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귀국 유학생은 1.44배로 늘었다.

양회 중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 격)가 개막한 지난 5일 트럼프는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선 캠페인 슬로건이었던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언급했다. 시진핑은 민영기업좌담회에서 "동풍이 서풍을 압도한다"는 마오쩌둥의 발언을 상기시키며 중국의 과학기술 역량이 서구를 능가한다고 강조했다. 마오쩌둥이 1957년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공산당 대회에서 한 이 발언은 중국식 사회주의(동풍)가, 서구 자본주의(서풍)를 이긴다는 뜻이었다. 시진핑은 동승서강(東升西降·동쪽은 뜨고 서쪽은 쇠퇴하고 있다)이란 표현도 써왔다. 이번 시진핑의 '동풍' 발언은 심화되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란 맥락에서 힘이 실리고 있다.

반면 여전히 반간첩법과 강력한 검열 정책을 유지하는 중국 정부가 진정 변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여전하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최근 중국공산당 이론지 추스(求是)가 시 주석이 항상 민간기업을 지원해왔다고 강조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해외에 망명 중인 중국의 민영 기업가들로 구성된 한 단체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민간 기업가들이 존재하는 한, 중국 정부의 말을 믿어서는 곤란하다"며 "실질적인 변화 없는 이런 화해의 제스처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