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원조예산 깎는 트럼프, 한국엔 리더십 발휘할 기회"

피터 샌즈(63) 글로벌펀드 사무총장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국제보건애드보커시

피터 샌즈(63) 글로벌펀드 사무총장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국제보건애드보커시

 
2000년대 초 인체면역결핍 바이러스(HIV) 환자 1명에게 치료제를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간 약 1만 달러(1450만원)에 달했다. 지금은 약 37달러(5만 3700원)로 줄었다. 개도국 저소득층 환자를 위해 국제보건기구들이 제약사들과 대량 구매 계약을 맺는 등 다양한 노력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국제보건 협력체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보건기구(WHO)의 탈퇴를 선언하고, 국제개발처(USAID)를 폐지하는 등 각종 해외 원조 예산을 삭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급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하기 위한 방한한 ‘글로벌펀드’의 피터 샌즈(63) 사무총장은 "미국의 지원이 없다면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자칫하면 지난 20년간의 성과가 수포가 돌아가고, 다시금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수백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펀드는 2002년 설립된 국제 민관 협력단체로 개발도상국의 3대 감염병(에이즈·결핵·말라리아) 및 코로나 19의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 각국 정부의 지원과 민간 기부금을 재원으로 지금까지 총 649억 달러(약 94조 원)를 지원해, 약 6500만명의 생명을 구했다. 

지난 6일 방한한 피터 샌즈(63) 글로벌펀드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열린 '한-글로벌펀드 고위급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한국의 국제보건 리더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한국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과 논의를 나눴다. 사진 국제보건애드보커시

지난 6일 방한한 피터 샌즈(63) 글로벌펀드 사무총장은 국회에서 열린 '한-글로벌펀드 고위급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한국의 국제보건 리더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한국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과 논의를 나눴다. 사진 국제보건애드보커시

샌즈 사무총장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펀드는 미국에서 초당적인 지지를 받아왔기 때문에 협력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미국의 ‘에이즈 퇴치를 위한 대통령의 긴급계획’(PEPFAR) 등 다른 파트너들의 활동에 차질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지금이 한국처럼 국제보건 분야에 의지를 가진 국가가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글로벌펀드는 3년마다 열리는 ‘재정 공약 회의’를 통해 기금을 확충하는데, 올 하반기 제8차 회의를 앞두고 있다. 앞서 한국은 7차(2023~2025년) 약정 회의 때 직전 약정 때의 4배인 1억 달러(1450억원) 공여를 약속, 글로벌펀드에 14번째로 많은 기부금을 내는 국가가 됐다. 글로벌펀드는 8차 약정에서 한국이 2억 달러 이상을 약속하길 희망하고 있다.

샌즈 사무총장은 “국제보건 분야에 대한 투자는 (수혜국뿐 아니라) 공여국 사람들의 안전도 담보하는 좋은 투자”라고 설명했다. 또한 “특히 (수혜국과 공여국 간 양자 협력에 비해) 다자협력은 거래 규모를 보장해 비용 효율성이 높아 공여국의 지원금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펀드는 한국 기업들에 좋은 비즈니스의 장”이라고도 말했다. 한국 바이오기업들이 2010년 이후 글로벌펀드를 통해 수주한 의약품·의료기기 규모는 8억 4900만 달러(1조 2317억원)에 달한다. 샌즈 사무총장은 “한국 기업들은 특히 진단기기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한국 기업들의 혁신에 최대한 신속하게 접근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