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 산하 서울시축구협회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회장 선거와 관련해 뒤늦게 담합 논란에 휘말렸다.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시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A씨가 최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제출한 선거 무효 및 당선 취소 소송 내용은 충격적이다. 일부 투표권자들이 특정 후보와 담합해 투표용지에 도장을 여러 번 겹쳐 찍거나, 또는 기표 구역 모서리 등 특정 위치에 찍는 방식으로 선거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 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처럼 특이한 방식으로 기표한 투표용지가 전체 투표 수 64표 중 26표(40.6%)에 이르는데, 공교롭게도 이 모든 표가 현 회장인 B후보를 지지했다. B후보는 지난해 12월 열린 선거에서 47표를 받아 나머지 두 후보(각각 9표와 8표)를 여유 있게 제치고 당선됐다. ‘기표 방식이 특이하다’는 지적을 받은 표는 B후보 득표 기준으로 55.3%에 이른다.
이처럼 특이한 기표 방식은 선거 당시에도 문제가 됐다. 서울시축구협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개표 과정에서 누가 봐도 이상하게 도장을 찍어놓은 표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자 경쟁 후보자측 참관인들이 ‘무효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잠시 소란이 있었던 걸로 안다”면서 “하지만 선거운영위원회가 ‘유효표로 인정한다’고 유권 해석을 내려 관련 논란을 잠재웠다”고 설명했다.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하던 선거 관련 내용이 뒤늦게 다시 불거진 건 서울시축구협회 산하 관계자들이 ‘특이한 기표 방식’과 관련해 사전 담합이 있었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눈 녹취록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해당 녹취록에는 “선거인단을 여러 직군으로 구분한 뒤 각 직군별로 기표 방식을 서로 달리하는 방식으로 표를 셌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한 A씨 측 관계자는 “특정 후보 위주로 투표할 것을 종용하고, 이른바 ‘배신자’를 가려내기 위해 각 직군별로 투표 방식을 달리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증거를 다수 확보해 법원에 제출했다”면서 “재선거 여부는 나중 문제다. 선거의 핵심 원칙이랄 수 있는 무기명 비밀투표 원칙이 무너진 것으로 의심 되는 상황에서 선거를 다시 해봤자 똑같은 결론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 측은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해야 할 선거운영위원회에 서울시축구협회 고위 관계자가 참여해 선거에 영향을 미친 정황도 함께 드러났다”는 주장 또한 하고 있다.
해당 상황에 대해서는 상급단체인 대한축구협회 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도 인지하고 진행 과정을 지켜보는 중이다. 체육회 관계자는 “선거 공정성 여부를 따지는 과정이 스포츠공정위원회나 스포츠윤리센터 등 체육계 자체의 심의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바로 법정으로 갔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서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면서도 “체육회가 체육단체장 선거 제도와 관련해 개선 작업을 진행 중인 만큼, 해당 소송 진행 과정과 결과도 참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축구협회 관계자는 “선거 과정에서 기표 방식이 특이한 표가 여럿 나온 건 사실이지만, 그것 만으로 부정 선거를 의심하는 건 지나친 억측”이라면서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실 축구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스포츠 종목단체장 및 각 지방 협회장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비슷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도장을 겹쳐 찍거나 비틀어 찍기, 특정 위치에 찍기, 또는 투표 용지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사진 전송하기 등등은 체육단체장 선거에서 부정 시비가 일 때마다 종종 등장한 단골 레퍼토리다.
그럼에도 비슷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되풀이 된 건 체육단체장 선거에 대해 대중적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선거’에서 ‘그들만의 논란’으로 잠시 번졌다가 이내 없었던 일로 치부 되곤 했다.
최근엔 기류가 달라졌다. 대한체육회장 선거,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진행 과정에 각종 논란이 불거지며 체육단체장 선거 공정성 문제가 체육계를 넘어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차제에 산하 단체장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합리적 선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나 투표의 편의성과 공정성을 함께 잡을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단적인 예로 투표권자들이 선거 당일 특정 장소로 이동해야하는 불편함을 덜기 위해 온라인 투표 시스템을 적용하자는 목소리가 높은데, 투표 담합이나 강요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물론 그에 앞서 공정하기 못한 사례가 확인된다면 발본색원해 책임을 묻는 단계부터 밟는 게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