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국외소재 문화유산 보전처리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보존처리를 마친 '활옷'이 공개됐다. 뒤쪽에 보이는 건 8폭 병풍 '평안감사 도과급제자 환영도'. 연합뉴스
이 가운데 하나인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M) 소장 활옷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공개되고 있다. 18~19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활옷은 1927년 당시 유명한 골동상이던 야마나카상회가 PEM에 기증했다. 여러 차례 사용으로 낡고 바랜 데다 그 후로도 약 100년이 흘러 애초의 자태를 잃은 상태였다. 이를 최근 국내기술로 보존처리해 제 모습을 살려냈다.
“활옷은 처음엔 왕실 혼례복이었지만 19세기 말부턴 사대부가와 평민들도 혼례날 입을 수 있었어요. 워낙 귀한 재료에다 만드는 데 공이 들어서 한 벌 만들면 두고두고 돌려가며 입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이 이 옷 속에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활옷 보존처리를 담당한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의 채정민 학예연구관의 말이다. 채 연구관은 지난 11일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제4회 국외소재 한국문화유산 보존·복원 국제심포지엄에서 관련 발표를 했다. 이어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좀 더 자세히 보존처리 뒷얘기를 들려줬다.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품인 조선 활옷이 보존처리 되기 전 앞모습. 오염과 탈색, 옷감 마모 등이 뚜렷했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품인 조선 활옷이 보존처리 되기 전 뒷모습. 오염과 탈색, 옷감 마모 등이 뚜렷했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비단 한복과 마찬가지로 활옷 역시 빨아입을 순 없었어요. 만약에 오염 때문에 꼭 세척해야 했다면 아예 봉제를 뜯어서 옷감 중에 세척할 건 하고 아닌 건 새로 해 넣었죠. 한번도 뜯지 않은 건 ‘진솔’이라고 옷고름 같은 데 실꼬리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게 없는 건 해체해서 수선했단 뜻이죠. 웬만한 활옷은 모두 수선자국이 있는데 이번 PEM 활옷은 특히나 여러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만큼 잘 만들어서 두고두고 대를 물려가며 입었단 뜻이죠.”

조선 고종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6남이었던 이곤(1919~1984)의 혼례사진. 사진 나무위키 캡처(의친왕기념사업회 제공)

지난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복온공주(1818~1832)의 홍장삼의 자수. 복온공주는 조선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왕후 김씨의 둘째 딸이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품으로 이번에 국내에서 보존처리한 조선 활옷 소매에서 김포 지역 노비의 추수기(추수 경작에 관한 기록)가 나왔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조선 활옷 보존처리 중에 소매에서 발견된 김포 지역 노비의 추수기(추수 경작에 관한 기록).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서 소매에 부착된 여러 겹의 한지를 해체하니 그 중 하나가 추수기(秋收記)로 확인됐다. 추수기란 경작지의 추수에 대해 기록한 문서다. 내용 중에 ‘金浦古縣內郡內兩面奴甲福秋收記 戊寅九月 日’가 있어 김포 지역 노비 갑복(甲福)이 기록한 추수기로 보인다. 여기 나온 무인년은 활옷 제작시기를 감안할 때 1818년, 1878년, 1938년 중 하나로 추정된다고 한다.

조선 활옷의 보존처리 중에 소매를 분리한 길의 겉안감 사이에선 낙복지(과거에서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가 나왔다.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약 13개월간의 보존처리를 거쳐 PEM 활옷이 재탄생한 모습이다. 지금이라도 인생 최고로 어여쁜 날, 신부에게 입혀 줄 수 있을만큼 색상과 자태가 선명해졌다.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품으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을 통해 보존처리한 조선 활옷의 앞모습.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품으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을 통해 보존처리한 조선 활옷의 뒷모습. 사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참고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라크마) 소장 활옷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의 지원 하에 국내에서 보존처리된 바 있는데, 당시 이 비용은 방탄소년단(BTS)의 RM(김남준)이 2021년 쾌척한 1억원에 힘입었다.
PEM 활옷은 오는 5월 미국으로 돌아가면 재개관하는 PEM의 한국실(유길준 갤러리)에 상설전시된다. 이에 앞서 4월6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PEM의 또 다른 보존처리 유물인 8폭 병풍 ‘평안감사 도과급제자 환영도’와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관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