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탄핵 땐 왔었는데…美국방 방한 무산, 커지는 '한국 패싱'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취임 후 첫 인도·태평양 지역 순방 일정에서 한국을 방문하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도 “외교 공백은 없다”는 정부 입장이 무색해진 셈이다. 북핵 문제 해결 등이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 당국자는 16일 “미 국방장관의 3월 말 방한을 협의했으나, 미측 일정 조정에 따라 불가피하게 순연됐다”고 밝혔다. 당초 미 측은 한국을 포함해 괌, 하와이, 일본, 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역내의 주요 미군 기지와 동맹국을 방문하는 일정을 추진했고, 한·미는 이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방한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20일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첫 장관급 인사가 방한해 국방당국 간 논의를 진행하고 동맹의 공고함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방산업계에선 조선업 ‘K-방산’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헤그세스 장관의 방한 추진을 이끌었다는 기대감도 상당했다. 실제 헤그세스 장관 측은 이번 방한을 염두에 두고 국내 조선소 방문 일정을 중점적으로 조율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해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선 후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조선업을 콕 집어 한국의 협조를 요청한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그랬던 미 측이 ‘일정’을 이유로 방한을 연기한 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동선을 봐도 인접국 일본 일정은 예정대로 소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북아 지역의 가장 중요한 두 동맹국 중 한 곳만 방문할 경우 중국이나 북한 문제와 관련해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만큼 미 고위 당국자들이 한·일을 같이 방문하는 게 사실상 그간의 관례였다.  

결국 이런 이례적 결정엔 방한에 따른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리더십 공백에 더해 국방부 장관도 대행 체제라는 국내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카운터파트조차 마땅치 않은 처지에 주요 현안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 책임 있는 결정권자가 없는 상황에서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미 측이 원하는 화두를 던지기 쉽지 않다고 봤을 수도 있다. 


김선호 국방부장관 직무대행이 지난 1월 31일 피트 헤그세스 신임 미 국방장관과 공조통화를 하고 있다. 국방부

김선호 국방부장관 직무대행이 지난 1월 31일 피트 헤그세스 신임 미 국방장관과 공조통화를 하고 있다. 국방부

아직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가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대화 의지를 밝히는 만큼 미 국방 수장이 대북 경고가 담긴 한반도 방어 공약을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앞서 박근혜 정부 탄핵 국면에선 2~4월 미 국방장관-국무장관-부통령이 연이어 방한한 걸 고려하면 결국 당시보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미 측의 관심도가 떨어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당시엔 강 대 강 대북 대치 구도에서 북핵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는 미 측의 의지가 컸지만 이번엔 러시아와 종전 협상 등 산적한 현안 등으로 상황이 다르다는 평가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방한이 성사됐다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 리뷰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새 국방 수장에게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