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 차기구축함 사업, 절친 대결로...HD현대 정기선 vs 한화 김동관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왼쪽)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 HD현대, 한화그룹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왼쪽)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사진 HD현대, 한화그룹

 
사업비 8조원에 육박하는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사업’을 두고 펼치는 절친 간의 치열한 맞대결에 관심이 쏠린다.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HD현대의 정기선 수석부회장과 한화그룹의 김동관 부회장이 이 사업에 사활을 걸면서다. 사업자 윤곽은 이르면 이번주 내 드러날 전망이다.  

방위사업청은 17일 사업분과위원회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1번함) 건조사업 방식을 심의한다. 사업방식은 수의계약 혹은 경쟁입찰 중 하나로 정해진다. 최종결정은 다음 달 초 국방부 장관(대행)이 주재하는 방사청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확정된다. 지난달 3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방사청 등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KDDX 생산 능력을 갖춘 방산업체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지정하면서 2파전이 확정됐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톤(t)급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다. 선체와 이지스 전투 체계에 모두 국내 기술이 적용되는 첫 국산 구축함을 만드는 사업으로 한국의 방위산업 기술을 알릴 기회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KDDX 사업의 향방은 오너 3세 간 자존심 대결로 흐르고 있다. 2009년 현대중공업 대리로 시작해 잔뼈가 굵은 정 수석부회장은 2023년 11월 그룹 부회장 자리에 오르며 오너경영 체제의 신호탄을 울렸다. 2010년 한화그룹 기획실 차장을 시작으로 경험을 쌓은 김 부회장도 2022년 8월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해양방산·에너지·우주항공 등 그룹 핵심 사업군을 이끌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두 사람이 KDDX사업 진행사항을 챙겨볼 정도로 관심이 상당하다”며 “경영능력을 검증받을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두 사람은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1982년생(43세), 김 부회장은 1983년생(42세)으로 한살 차이다. 선대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952년생으로 서울 장충초 동기 동창이다보니 어릴 적부터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2016년 김 부회장의 조모상에 참석한 정 수석부회장이 취재진 앞에서 “동관이 친구라서 오게 됐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였다. 김 부회장도 코로나19 때인 2020년 가족·지인 등 100명 정도만 초대된 정 수석부회장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2023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 깡통시장 방문 당시에는 총수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나란히 붙어서 떡볶이를 먹었으며, 지난 1월 ‘2025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도 옆자리에서 한참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2023년 12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기업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 튀김 빈대떡을 시식하고 있는 가운데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오른쪽 첫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오른쪽 둘째)가 꼭 붙어있는 모습. 오른쪽 셋째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윤 대통령,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재원 SK수석부회장. 연합뉴스

2023년 12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기업 총수들과 함께 떡볶이 튀김 빈대떡을 시식하고 있는 가운데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오른쪽 첫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오른쪽 둘째)가 꼭 붙어있는 모습. 오른쪽 셋째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윤 대통령,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재원 SK수석부회장. 연합뉴스

 
하지만 KDDX사업을 놓고는 두 사람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함정 건조 사업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등 네 단계로 구성된다. 한화오션은 2012년 개념설계를, HD현대중공업은 2020년 기본설계를 각각 수주했다. 방사청은 지난해 7월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었지만 두 회사가 고소·고발전을 벌이며 경쟁이 과열되자 선정을 미뤘다.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2013년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의 KDDX 개념설계도 등 기밀자료 12건을 불법취득한 게 발단이었다. 2023년 해당 직원들이 유죄확정 판결을 받았는데 방사청은 “임원개입의 객관적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지난해 2월 HD현대중공업의 KDDX사업 입찰제한을 면제했다.

그러자 한화오션은 지난해 3월 “임원이 개입된 정황을 수사해달라”며 HD현대중공업을 경찰에 고발했고, HD현대중공업도 지난해 5월 “한화오션이 직원 명예를 훼손했다”며 맞고소했다. 양측은 지난해 11월 고소·고발을 취소했지만 불편한 감정은 여전하다.

지난 1월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5년 경제계 신년회에서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왼쪽 첫째)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왼쪽 둘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 셋째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유튜브 캡처

지난 1월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5년 경제계 신년회에서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왼쪽 첫째)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왼쪽 둘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 셋째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유튜브 캡처

방사청이 사업방식을 수의계약으로 정하면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할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는 관측한다. 기본설계 수주업체가 통상 수의계약으로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맡아왔기 때문이다. 경쟁입찰 방식이라면 한화오션이 유리하다. HD현대중공업은 기밀유출 건으로 2023~2025년 방사청 사업입찰 시 감점(1.8점)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2023년 한화오션이 따낸 해군 차기호위함(FTX) 경쟁입찰에서 HD현대중공업은 0.1422점 차이로 고배를 마셨을 만큼 1.8점 감점은 당락에 직결된다.

일각에서는 제3의 선택지로 ‘공동설계 및 선도함 동시건조’ 방안도 나온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맺는 대신, 한화오션에도 협력할 기회를 주는 방식이 예상된다”고 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HD현대중공업은 군사기밀유출이라는 ‘원죄’가 있다는 점이 참작돼 경쟁입찰 혹은 공동설계 방안이 고려될 것”이라고 했다.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맡아 제작한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의 조감도. 연합뉴스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맡아 제작한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의 조감도. 연합뉴스

 
KDDX사업 수주전이 치열한 것은 미국의 군함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수주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MRO 예산(의회승인 기준)은 2020년 60억9300만 달러(약 8조7200억원)에서 2023년 73억7900만 달러(약 10조7300억원)로 크게 늘었다. 김기원 대경대 군사학과 교수는 “이지스함 등 특수선 건조·정비 능력을 대외적으로 선보인 업체는 미 해군 MRO 사업과 추후 한국 해군 군함 건조 사업의 수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사업자 선정이 더 치열한 이유”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