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의대생들 복귀를 조건으로 내년 의대 모집인원 동결 방침을 세운 가운데, 12일 충북 청주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하지만 16일 중앙일보가 7대 요구안을 항목별로 분석해보니 5개는 의정갈등 전보다 상당한 진전이 이뤄졌거나 이미 받아들여진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요구인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 계획 전면 백지화'를 두고 의·정 입장이 갈리지만, 의료계 안팎에선 정부의 동결 선언이 나온 만큼 무조건적인 복귀 거부가 설득력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7대 요구안 중에서 4개는 정부·국회의 대안 마련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의사 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 법적 대책 ▶열악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다.
의대 '3058명' 동결에도…1년 넘은 요구안, 복귀 장벽

정근영 디자이너
박단 위원장은 통과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복지부 장관 직속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결국 (의료계) 목소리를 듣는 척만 할 것"이라면서 반발했다. 하지만 '빅5' 병원을 사직한 한 전공의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추계를 위한 추계위는 의료계 요구였다. 여기에 참여해 (정원) 감원 가능성을 기대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나머지 셋은 정부가 지난해부터 의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은 지난해 10월부터 전문의·진료지원(PA) 간호사 중심의 중증 진료 체계를 내세운 구조전환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100개 수련병원의 전임의(펠로우) 계약률은 지난해 3월 41.9%에서 올해 2월 73.5%로 올랐다. 이는 모두 병원 내 전공의 의존도 축소의 연장선에 있다.
의료사고 대책 등 진전…"필수의료 정책 백지화 안 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차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전공의들이 민감해하는 수련 환경 개선도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 수련시간 단축을 위한 전공의법 개정이 지난해 이뤄졌다. 복지부는 올해 주당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을 거쳐 내년 2월께 적정 수련시간 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전공의에 대한 부당한 명령 철회' 주장은 정부가 지난해 6월 사직서 수리금지명령과 진료유지·업무개시명령을 전면 철회하면서 반영됐다. 다만 이와 연결된 요구인 '의료법 59조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신현호 변호사(법무법인 해울)는 "의료행위를 독점하면서 진료 보고 싶을 때만 환자를 보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국민의 생명권을 규정하는 헌법 10조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복지부도 "헌법상 국가의 책무인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부정적 입장이다.
남아있는 제일 큰 관건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의 백지화다. 요구안 제일 위에 오른 이 항목은 견해차가 뚜렷하다. 전공의·의대생은 비급여 진료 규제 등을 담은 필수의료 패키지를 아예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 0명' 선언도 "한시적으로 동결하되 앞으로 계속 증원하겠다는 것처럼 말해서 전공의·학생들이 신뢰하기 어렵다"(박단 위원장)라고 일축했다.
의대 교육 대책 등 새 조건도…"비현실적, 파국 갈 것"

지난달 25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도 전공의·의대생은 의대 교육 대책 등 새로운 조건까지 내걸고 있다.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이 지난 7일 입장문에서 "학생들은 24·25학번 교육 파행에 대한 해결 등을 과제로 제시하는데,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수업 복귀를 거부한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의대 교수들은 "24·25·26학번이 쌓이는 상황에선 교육 자체가 불가능하다. 의대생들부터 돌아와야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다"라고 호소한다. 익명을 요청한 필수의료 교수는 "전공의와 달리 의사 면허도 없는 의대생은 제적되면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가 양보한 동결안을 거부하고 새로운 제안만 내놓는 건 비현실적이고,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수업 복귀, 동료 간주 않겠다" 건대 의대생 수사의뢰

한 의대 건물 바깥에 정부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하지만 상당수 의대생은 여전히 수업 복귀를 망설이는 분위기다. 본과 4학년 과정에 복귀한 한 의대생은 "모든 일이 마무리 된 후 학생들이 돌아왔을 때 다수의 휴학자가 소수의 조기 복귀자를 괴롭히는 걸 막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연세대·고려대 의대 등이 예고한 수강신청 및 등록 시한은 오는 2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