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계엄 뒤 與野 33명 고발전…여의도 '정치의 사법화' 자초

사진 위쪽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2월 15일 오동운 공수처장과 우종수 국수본부장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는 모습. 아래는 지난 10일 야 5당 관계자들이 심우정 검찰총장을 공수처에 고발하기 위해 들어서는 모습. 중앙포토

사진 위쪽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2월 15일 오동운 공수처장과 우종수 국수본부장을 고발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는 모습. 아래는 지난 10일 야 5당 관계자들이 심우정 검찰총장을 공수처에 고발하기 위해 들어서는 모습. 중앙포토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야가 서로 고발한 국회의원의 숫자가 3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와 협상이라는 정치의 본령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사법이 채우는 ‘정치의 사법화’가 팽배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중앙일보가 여야의 고발 내역을 집계한 결과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19명을, 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 14명을 각각 고발했다. 국민의힘은 계엄 사태 증인에 대한 위증교사나 강요, 명예훼손 혐의 등을 이유로, 민주당은 내란 공범 또는 내란 선전 혐의 등을 내세워 상대를 법적 조치했다. 국민의힘이 지난 7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의 양심 선언을 회유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김병주·박범계·박선원·부승찬 민주당 의원을 위증교사·강요 등 혐의로 고발하고, 민주당이 국민의힘 나경원·윤상현·박상웅 의원을 내란 선전 혐의로 고발한 게 대표적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명예훼손)과 권성동 원내대표(내란 선전), 민주당 이재명 대표(명예훼손 등)와 박찬대 원내대표(명예훼손 등) 등 여야를 이끄는 ‘투톱’도 고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의원 10명 중 1명 꼴로 상대 당에 의해 고발된 것은 법원의 판단에 모든 것을 떠넘기는 정치 기능 상실의 상징적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의원으로만 한정하면 국민의힘 측에서 고발한 인원이 더 많지만 의원이 아닌 경우까지 합하면 민주당이 고발한 숫자가 더 많다. 민주당은 대통령실·정부·군 관계자, 보수 유튜버나 성명 불상의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국가인권위 진입 시도) 등 100명 가까이 고발했다. 계엄 뒤 민주당 법률국에서 고발한 건수만 해도 59건에 달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수사기관도 타깃이 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 8일 석방되자 국민의힘은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을 대통령 불법체포 및 직권남용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같은 시기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 5당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에 빌미를 줬다며 심우정 검찰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러한 ‘묻지마 고발’ 행태는 여야의 협상 공간을 극도로 좁게 만들었다. 이재명 대표가 ‘우클릭’ 논란까지 일으켰지만 지난 13일 상법 개정안은 민주당 주도로 일방 통과된 반면 반도체특별법 제정안은 진도가 늦어지는 게 대표적이다. 그나마 여야가 1년 넘게 시간을 끌던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지난 14일 모수개혁(보험료·소득대체율 조정)에라도 합의한 게 나름의 진전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가 틈만 나면 사법부나 헌재로 달려가 놓고 수틀리면 사법 불신을 자극하고 있다”며 “정치권이 ‘정치 블랙아웃(blackout·무력화)’ 상태를 자초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