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돼지 삼형제’가 세월이 흘러 은퇴시기를 맞았다. 지푸라기로 집을 지어 늑대의 공격을 받았던 첫째는 연금 투자도 제대로 하지 않아 기초연금만 기다리는 처지다. 나무로 집을 지었던 둘째는 연금엔 가입했지만 적극적으로 운용하지는 않았다. 10년 평균 수익률이 2.57%(2024년 말 기준 확정기여형 가중평균 수익률)다. 반면에 튼튼한 벽돌집을 지어 늑대의 공격을 피했던 셋째는 연평균 연금 수익률도 7%(실제 사례)로 상위 1% 수준이다. 지난해만 보면 원금 대비 수익률이 45.43%를 기록했다. 두 형은 또다시 막내에게 의탁해야 할 상황이다. 무엇이 삼형제의 노후 대비를 갈랐을까.

국내 은퇴자들의 노후를 뒷받침해야 할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430조원 넘게 쌓였다. 특히 개인이 직접 연금을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제도(IRP)가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문제는 처참한 수익률이다. 회사가 보장하는 확정급여(DB)형은 차치하더라도 DC형의 지난해 4분기 기준 적립금 가중평균 10년 수익률은 2.57%, IRP 수익률은 2.33% 등으로 집계됐다. 차라리 은행 적금 이자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100세 시대, 앞으로 살아갈 날과 물가상승률 등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연금 투자를 어떻게 해야 낮은 수익률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연금 수익률 상위 1%는 어떻게 투자하고 있을까. 셋째 아기 돼지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18년 차 회사원 A씨(49세)의 ‘비밀 노트’를 펼쳐 투자 비밀을 알아봤다. 서울의 대표적인 신흥 부촌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에 위치한 미래에셋증권 투자센터 반포WM의 오정택 이사와 함께 했다. 

A씨의 연금 투자에 완전히 새롭고 기발한 전략은 없다. 하지만 3가지 확실한 원칙이 있다. ▶자신의 투자방향을 확실하게 설정하고 ▶시장의 부침과 관계없이 장기적 수익률을 목표로 꾸준히 매수하며 ▶자산 배분투자를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point 1. 원금 보장만? “적극 운용하라”
퇴직연금은 노후자금인 만큼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게 필수다. 하지만 은행예금 수준의 수익률만 가져가려면 굳이 퇴직연금에 가입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퇴직연금 가입자 10명 중 8명은 여전히 원리금(원금) 보장 상품을 선택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87.2%가 예·적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들어 있다.

연금 상위 1%의 공통점은 ‘돈을 잠자게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오정택 투자센터 반포WM 이사는 “연금계좌의 큰 장점은 운용기간 중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일반적으로 높은 세금 때문에 해외투자를 쉽게 하지 못하는데, 연금계좌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그래도 손실을 입을까 불안하다면 ‘사전지정운용(디폴트옵션)제도’를 고려해볼 만하다. 정부는 2021년 가입자의 무관심, 금융 전문성 부족 등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이 원리금 보장형에 묶여 있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일정 기간 방치된 상품을 자동으로 운용하는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월 현재 315개 금융 상품이 정부로부터 디폴트옵션 승인을 받았다. 이들 상품 중 원리금까지 보장하는 초저위험상품의 1년 수익률은 3.3% 수준이지만, 고위험상품은 16.8%에 달한다. 디폴트옵션은 각 금융사가 역량을 집중한 간판 격 상품으로, 정부의 모니터링과 관리·감독도 엄격한 편이다.

📌point 2. 수십 년 투자 한 방에? “좀 더 묵혀놔라”
퇴직연금은 은퇴 후 안정적 생활을 위한 자산이다. 하지만 실제로 퇴직연금을 은퇴 후 월급처럼 받아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23년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수령한 비중은 10.4%에 불과했다. 10명 중 9명은 55세에 퇴직연금을 한번에 일시금으로 수령한다는 얘기다. 같은 해 IRP를 해지한 가입자 수는 106만3000명으로 전년보다 7.7% 늘어났다. 해지 금액도 전년보다 8.4% 증가한 15조원에 달했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연금으로 수령할 경우 퇴직소득세 절감, 종합과세 관리, 건강보험료 절감 등 혜택이 더 많다”며 “하지만 이런 이점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낮기 때문에 가입자들이 한 번에 목돈을 수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세제 혜택만 고려해도 연금 형태로 수령하는 게 더 이익이다.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과세표준 1400만원 이하 6%에서 10억원 이상 45%까지)를 원천징수한 금액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연금 형태로 수령하게 되면 연금 수령 10년 차까지는 퇴직소득세의 70%를 부과하고, 연금 수령 11년 차부터는 60%를 부과해 추가적인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point 3. 포트폴리오엔 ETF·펀드 90% 
연금 투자수익률 상위 1%는 어떤 분야에 투자하고 있을까. 그들의 계좌에 ‘투자 힌트’가 들어 있다.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2006년부터 지난 1월 말까지 미래에셋증권 DC 가입자 중 상위 1%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해봤다.

🧩 “美·中 해외지수 ETF 투자를”
상위 1% 가입자의 계좌엔 평균적으로 상장지수펀드(ETF)와 펀드가 각각 67.51%, 23.72% 담겨 있었다. 전체 연금자산의 약 91%에 달한다. 개인들이 직접 우량주를 찾기 위해 시간과 힘을 쓰지 않아도 쉽게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중국·인도 등 해외시장의 지수 ETF 매수 비중이 높았고, 타깃데이트펀드(TDF) 상품도 많이 담았다.

🧩원리금 보장상품은 10% 이하로
상위 1% 가입자의 계좌에 원리금 보장상품 비중은 10% 이하였다. 펀드를 제외하고 담은 다른 자산을 살펴보면 현금성자산(5.59%)·예금(2.87%)·채권(0.2%)·이율보증형보험(GIC·0.2%) 등으로 나타났다. 채권의 경우 수익률이 일반 예금보다 높으면서 안전성도 뛰어나다고 평가받지만, 오히려 예금보다 비중이 낮았다.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투자성향을 보이는 게 공통점이다.

🧩장기·분산 투자 원칙 지켰다
상위 1% 가입자의 계좌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ETF를 구매한다고 해도 평균 10종목 정도로 분산해둔 것. 이 밖에 꾸준한 상품 매수, 리밸런싱(자산 재분배), 해외투자 비중 조정 등을 통해 시장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 “이건 안 된다” 연금 투자 실패 공통점은
투자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도 있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연금 투자수익률 하위 1%의 공통점은 ▶특정 국가에 투자를 집중하거나 ▶에너지원·운송체계·라이프스타일 등 분야에서 클린(친환경) 테마 종목을 너무 많이 보유하고 ▶최근 몇 년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악재를 겪고 있는 전기차 관련 ETF를 집중 보유하고 있었다. 글로벌 시장 상황이 급변하는 가운데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건 위험하다는 교훈을 잘 보여준다.

오정택 이사는 “연금 투자를 단기적으로 접근해 수익률에 연연하거나, 한쪽에 치우친 투자를 하는 투자자는 실패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 투자도 잘할 수만 있으면 이점이 있겠지만 저점과 고점을 맞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특정 섹터에 치우치지 말고 우량한 자산에 중장기적으로 분산 투자하는 게 가장 쉬우면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1% 연금 고수들은 연금 투자금액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오 이사는 “여력이 되는 고객들에겐 연금계좌·IRP 납입 한도인 1800만원을 다 채우라고 권장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면서도 “본인의 자산 여력이 가장 중요하다. 입금액에 따른 수익률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세제혜택을 더 받을 수 있는 게 차이”라고 말했다.

1% 연금 고수들은 매달 입금할까, 한번에 입금할까.
오 이사는 “매월 월급날 연금계좌에 세액공제금액만큼 입금하라고 제안한다”며 “다달이 입금하는 적립식도 리스크 분산 방법의 하나다. 언제 위험이 발생할지 모르고, 언제가 가격 저점인지 알 수 없지만 임의식(원하는 시기에 납부)보다는 적립식이 리스크를 조금 더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1% 연금 고수들은 계좌 수익률을 얼마나 자주 확인할까. 오 이사는 “연금 투자는 장기전이므로 매일 체크하기보다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분기에 한 번씩 확인하길 추천한다”며 “대부분의 금융회사가 매월 수익률을 문자메시지나 알림톡으로 보내준다. 그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리밸런싱을 해도 충분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