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걸린 종전 협상, 조급해진 北…'파병 청구서' 탐색전 나설듯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부분적인 휴전에 합의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북한은 경제·보건 분야 대표단을 러시아로 보내 다양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무기를 포함한 군수 지원과 대규모 파병을 통해 전쟁에 관여해 온 북한이 러시아 측에 들이밀 '파병 청구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며 종전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노동신문은 18일 북·러 정부 간 '무역경제 및 과학기술협조위원회' 북측 위원장인 윤정호 대외경제상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경제대표단이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해 전날 평양에서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대표단의 방러 목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트럼프와 푸틴이 직접 나선 종전 로드맵 가동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지난 6월 푸틴 방북 당시 북·러 양국이 체결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새 북·러 조약)'에 따라 러시아를 지원해온 북한이 종전을 앞두고 대가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일단은 에너지와 인프라 에 국한한 부분적 휴전이라 당분간은 격전지 쿠르스크 지상전에서 북한군의 존재가 계속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이지만, 협상에 제대로 시동이 걸린 만큼 종전 협의가 언제든 급물살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 뒤 서명한 조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평양에서 정상회담 뒤 서명한 조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관영 매체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북한 보건성 실무 대표단(단장 전설용 보건성 부상)도 지난 17일 러시아로 향했다. 이들은 만성적인 경제난과 국제사회의 전방위 대북제재로 낙후된 보건·의료 분야와 관련한 지원과 협력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은 김정은의 대표적인 숙원사업 중 하나인 평양 종합병원 건설을 착공 5년 만인 지난달 말에 마쳤지만, 개원은 오는 10월에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에서는 의료장비가 포착되지 않았는데.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의료장비 반입이 원활치 않아 개원을 미루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등판해 푸틴과 담판을 짓는 방안도 검토하는 분위기다.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차관이 지난 15일 평양을 방문해 최선희 외무상을 만나고 김정규 외무성 부상과 회담했다면서 방북 기간 "고위급 및 최고위급 정치 접촉 일정을 포함해 양자 관계 발전의 현안에 대해 철저히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최고위급은 김정은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전 시계가 빨라지는 가운데 톱다운(top-down·하향식) 방식을 선호하는 김정은이 정상 간 만남을 통해 승부를 보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 측은 오는 5월 전승절 행사에 북한군을 초청했는데, 이처럼 김정은의 러시아 답방 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푸틴은 지난해 6월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직후 김정은의 모스크바 방문을 요청했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다만 트럼프와 푸틴이 우크라이나 종전 문제와 함께 '전략무기' 비확산 관련 협상도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우려할 만한 부분일 수 있다. 군사정찰위성, 전략핵잠수함(SSBN) 등 첨단 전략무기 관련 기술을 러시아로부터 받아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쟁으로 인해 선을 넘고는 있지만, 합법적인 핵무기 보유국(P5, 미·러·중·영·프)인 러시아가 미국과의 군축협상 중 자국의 지위를 스스로 위협할 수 있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지도 의문이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러시아는 미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종전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전략적인 가치를 다시 들여다볼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북한이 원하는 전략무기 관련 기술의 공유는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