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코 신규원 예정부지 두코바니 전경.(대우건설 제공) 뉴스1
한국수력원자력이 그동안 공들여 온 유럽의 네덜란드 신규 원전 사업 수주 계획을 접는다. 한수원이 유럽 원전 수출 경쟁을 벌이다 중단 선언을 한 건 지난해 말 스웨덴과 지난 2월 슬로베니아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최근 마무리한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지재권) 분쟁 협상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19일 원전업계 등에 따르면 한수원은 최근 네덜란드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2차 기술 타당성 조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22년 말 원전 건설 로드맵을 발표한 뒤 올해부터 1000㎿(메가와트)급 이상 원전 2기 건설 입찰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해 1차 기술 타당성 조사에 참여하는 등 네덜란드 원전 수주에 공을 들였다. 지난해 7월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네덜란드 원전 수주 전망도 밝아졌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수원이 돌연 입찰을 포기하면서 네덜란드 원전 수주전은 웨스팅하우스와 프랑스 전력공사(EDF)의 양자 구도로 진행될 예정이다. 한수원은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체코 원전 최종 계약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향후 유럽 시장에서는 SMR(소형모듈원자로)에 집중할 계획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지난달 슬로베니아 크르슈코 신규 원전 ‘JEK2 프로젝트’의 사업 타당성 조사에도 불참했다. ‘JEK2 프로젝트’는 현재 가동 중인 크르슈코 원전 1호기 인근에 최대 2400㎿ 규모 대형 원전 1~2기를 추가 건설하는 사업이다. 사업비는 최대 2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이곳 수주전 역시 웨스팅하우스와 EDF 대결이 됐다. 한수원은 지난해 말 스웨덴 전력회사 바텐폴이 발주한 수주전에서도 철수했다.
유럽은 한국이 노릴 수 있는 최대 원전 수출 시장이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에서 추진되고 있는 원전 프로젝트는 총 186개인데, 이 중 약 38%인 70기가 폴란드·우크라이나·루마니아 등 유럽 국가들이다. 하지만 한수원은 지난 1월 웨스팅하우스는 지재권 분쟁에 합의한 이후 연달아 유럽 원전 수주 포기를 선언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상 결과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측은 지재권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체코 원전 계약이 마무리되면 유럽 수주는 웨스팅하우스가 주도하고, 한국은 중동·동남아 등 수주에 집중하는 식으로 합의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한국 기업으로 구성된 원전 ‘팀 코리아’에 걸림돌이 생긴 모양새다.
물론 한수원 측은 웨스팅하우스와의 합의와 최근 유럽 원전 수주 불참 건은 별개라며 선을 긋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유럽 원전 시장에서 수주 경쟁을 할 수 있는 기업은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미국), EDF(프랑스) 정도인데 한수원이 입찰에 참여하길 희망하는 국가가 아직 많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수원은 현재 폴란드와 카자흐스탄 원전 수주 절차에는 참여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재권 협상으로 ‘팀 코러스(팀 코리아+US)‘를 통한 협력은 오히려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원전 시장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팀 코리아’로 수주에 나설 때보다는 이익이 다소 줄어들 수 있지만, 한국 기업의 사업 수주 기회는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원천기술을 지닌 기업이지만, 30년 이상 미국 내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서 원전 시공 경험 등이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한수원과 두산에너빌리티, 한국 건설사 등의 기술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웨스팅하우스는 사업을 진행 중인 불가리아 코즐로두이 원전과 스웨덴·슬로베니아 원전 수주전에서 한국 건설사인 현대건설과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