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피셜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뜨개를 하며 영화를 보는 '뜨개 상영회' 사진 바늘이야기
이 기발한 행사를 기획한 이는 뜨개 상점 ‘바늘이야기’의 김대리입니다(본명 노출을 꺼리는 그가 외부와 소통하는 이름입니다). 우연히 해외 ‘뜨개 영화관’ 영상을 보고 이벤트를 열었다고 해요.
8년 전, 그는 바늘이야기의 창업자인 어머니 송영예 대표로부터 SNS 운영을 맡아보라는 미션을 받고 입사를 했습니다. 이후 유튜브 콘텐츠·SNS 운영·도안 디자인·매장 운영 등 사업 전반에 부각을 나타내며 13억원이었던 바늘이야기 연 매출을 130억원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죠. 김대리 역시 채널 구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지은 이름입니다. 또래인 2030 세대 주변에 있을 법한 ‘김대리’는 뜨개에 입문하는 친근한 가이드가 됐죠. 이제는 힐링 문화로 떠오른 뜨개 열풍을 이끌기까지, 어떤 스토리가 엮였을까요. 비크닉이 김대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할머니 취미 아냐?” 무시 싫어 대기업 두드렸다
‘뜨개 상영회’는 어떻게 열게 됐나요.
영화배급사와의 협업으로 행사를 열게 됐습니다. 첫 상영은 지난해 12월, 연희동 예술 극장인 라이카시네마에서였어요. 예매 창이 열리자마자 5분 만에 매진이 됐죠. 그 사례를 발판 삼아 공개 러브콜을 보냈어요. ‘저와 함께하실 메가박스·CGV 모십니다’ 하고요.

바늘이야기 김대리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일상의 뜨개화'를 전파한다. '김대리의 취향니트' '김대리의 데일리 뜨개' 등 관련 서적도 여럿 냈다. 사진 비크닉
판을 키우고 싶었던 건가요.
뜨개질이 다시 열풍이라고는 하지만, 주류가 될 만큼 취미인구가 많은 상태는 아니에요. 활성화된 취미인은 20만 명, 시도해보거나 쉬엄쉬엄하는 분까지 합치면 1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거든요. 제 또래 사이에서 러닝이 취미라고 하면, 멋있다는 반응이 오지만 뜨개가 취미라고 하면 ‘조신하다’는 등 무시하는 말을 듣기 십상이에요. 저의 올해 목표가 ‘뜨개인의 위상을 높이자’ 입니다. 대기업에서 뜨개인을 코어 고객으로 주목하도록 파워를 보여주고 싶어요. 수익 없이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유죠.

300년된 영국 저택에서 뜨개 기법을 배우며 여행하는 '니팅 리트릿'에 참가했다. 출처 유투브 '바늘이야기 김대리'
혼자 하는 취미가 공동체로 밀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어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저는 SNS를 통해 트렌드나 영감을 많이 얻어요. 릴스와 쇼츠를 훑는 게 시간 버리는 일이라든가 뇌가 썩는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웃음). 또 좋은 사례를 발견하면 직접 체험해 보려고 해요. 유럽권에서는 뜨개 기법을 배우며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니팅 리트릿(Knitting Retreat)’ 프로그램이 발달해 있어요. 저도 영국에서 2박 3일간 체험해 봤는데, 취미를 통해 커뮤니티에 속할 수 있다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꼈어요. 좋은 경험은 바늘이야기에서 적용합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100명이 자신이 뜬 스웨터를 입고 모여 한국판 ‘어글리 스웨터 데이(특이한 디자인의 스웨터를 입고 모이는 날로 캐나다에서 시작됐다)’를 신나게 즐겼죠.
니트 짜는 법부터 OOTD까지…2030 열광한 ‘뜨개 일상’

일상에서 입고 싶고, 들고 싶은 아이템을 제안한다. 출처 바늘이야기 SNS
43만 명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정보성 콘텐츠가 성장 동력이 됐어요. 사람들은 뜨개질에 대한 방법이나 유익한 팁을 원하니까요. 이후에는 정보를 제공하는 김대리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어요. 정보로 다진 신뢰 위에서 소통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뜨개 미니백 4시간 완성’ 같은 직관적인 가이드도 있지만, 브이로그나 옷 스타일링 영상도 인기가 많아요.
줄곧 뜨개를 주류로 편입시키기 위한 흐름을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나라는 개인도 대중의 한 사람이니까 최대한 뜨개를 하는 모습을 많이 노출했어요. ‘어떤 20대 사람이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어 나도 해볼까?’하는 마음이 들도록요. 뜨개로 만든 옷이나 아이템을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소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단순히 신제품이나 인기 아이템을 홍보하는 것보다 주효했죠.

내가 원하는 아이템의 모양과 색을 직접 디자인해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뜨개의 큰 매력이다. 출처 바늘이야기 SNS
실제로 2030세대 뜨개인이 늘었다고요. 매출 비중이 궁금해요.
30대가 32%로 가장 많고 20대와 40대가 각각 25%로 비슷한 규모입니다. 다음으로 50대가 13.5%가량 차지하고요. 이제 뜨개는 전 연령층이 즐기는 취미가 됐다고 생각해요. 젊은 층이 뜨개 시장에 들어오면서 옛날과 다른 문화도 생겼어요. 예전에는 패키지로 구매해 샘플과 똑같이 뜨는 것을 선호했다면 요즘은 도안을 따로 사서 내가 원하는 조합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죠.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소통하는 뜨개 인플루언서가 생겼고, 최근엔 대학교에 뜨개 동아리도 생겼어요. 가장 뿌듯한 건 학생들이 창업 과제로 뜨개 사업을 아이템 삼았다며 연락 올 때에요.
뜨개하면 왠지 겨울이 생각나는데, 계절을 타진 않나요.
뜨개는 사계절 내내 계절을 타지 않아요. 시원한 소재의 실을 사용하는 아이템들이 많아서 여름에도 꾸준히 수요가 있죠.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가방 아이템이 가장 잘나갑니다.
실 집어 들게 만드는 공간 마케팅…100평 규모 뜨개 놀이터

바늘이야기 연희점. 뜨개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한다. 이소진 기자
2015년 파주점에 이어 2021년 연희점에 매장을 냈어요. 숍·카페·아카데미·스튜디오까지 건물 전체가 복합문화공간인데요. 각양각색 실타래로 장식한 벽이 인상적이에요.
별마당도서관을 처음 가본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상점이지만 동시에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 싶은 매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매장의 모든 시스템은 처음 온 입문자들을 배려해 디자인돼 있어요. 입구부터 ‘올-인원 패키지’를 배치해 심리적 저항선을 낮추고, 매장 곳곳 첫 방문자를 위한 팁과 구매 가이드를 설치해 뒀죠. 몇 시간이면 뚝딱 만들어 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과 도안을 통해 ‘나도 해 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게 중요해요.
카페에는 뜨개하는 분들이 많이 앉아 있네요. ‘바만추’ 팻말을 자리에 두면 자연스럽게 만남도 가능하다고요?
바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축약어인 ‘자만추’에서 따왔다)는 뜨개 친구를 사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만든 건데요. 뜨개를 하다 보면 옆 사람이 뭘 뜨고 있는지 궁금하고 말 걸어보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이 팻말이 시그널이 되는 거죠. 하지만 실제로 활용하는 분이 많지 않아요. 우리나라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답니다.

매장에서는 다양한 뜨개 부자재는 물론 완성본의 상세 정보를 자세하게 제공한다. 이소진 기자
바늘이야기의 꿈은 무엇인가요?
해외에 진출하고 싶어요. 외국에 나가보면 바늘이야기 매장처럼 뜨개 전문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을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만든 좋은 실과 감각적인 도안, 일상에 적용 가능한 콘텐츠가 충분히 매력적일 거라 생각해요. 두 번째는 바늘을 만드는 거예요. 실은 국내 생산 공장이 많지만 바늘은 아직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거든요. 브랜드 이름이 ‘바늘이야기’인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좋은 품질의 바늘을 개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