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0일 경기도 평택시 고덕동 한 점포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가람 기자
같은 날 고덕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정문 앞 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이 자리 임대 문의’라는 문구가 붙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부동산도 폐업할 지경”이라며 씁쓸해했다. 텅 빈 가게가 늘어선 거리에는 평택시 소득세 납부 안내 현수막만 펄럭였다.
반도체 팹(공장) 건설이 멈춘 평택시의 현주소다. 삼성전자가 2015년부터 289만㎡(약 87만 평) 규모로 6개 생산라인(P1~P6) 건설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10월 완공 예정이던 P4는 공사가 중단됐고 P5도 기초공사 이후 진척이 없다. D램 공급 과잉과 파운드리 수주 부진이 맞물리면서 공사 일정이 연기됐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흔들리자 반도체 도시들의 지역 경제도 위태롭다. 반도체 팹은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인 만큼 건설업 고용 유발 효과가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공사가 진행 중인 반도체 팹이 몰려 있는 경기도의 건설업 취업자는 55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10%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 건설업 취업자 감소율(-8.7%)보다 더 컸다.

김영옥 기자
팹 공사가 멈추자 협력사 법인세는 물론 원천세, 주민세, 소비 관련 지방세도 줄줄이 감소했다. 지역 상권과 세수가 동시에 쪼그라드는 ‘이중 타격’이다. 공정택 평택상공회의소 회원사업본부 본부장은 “점심시간마다 붐비던 고덕동 식당가가 삼성 공사 중단 이후 텅 비면서 상권 침체가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경기 남부권의 다른 지자체도 반도체 업황에 따라 울고 웃는다. 수원, 용인, 화성도 지난해 ‘삼성전자 법인세 0원’의 충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배관·설비·클린룸 같은 기계설비 업계도 비상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국내 팹 건설 현황에 따라 업계 상위권 회사들의 매출이 출렁인다.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수주액 28조원 중 3조3000억원(11.8%)이 삼성전자 한 곳에서 나왔다. 특히 발주가 줄어들면 전기 설비나 배관공처럼 학력과 무관하게 기술로 고소득을 올려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제조 기능직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게 문제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첨단산업 투자가 끊기거나 지연되면 반도체 팹을 지을 수 있는 고숙련 현장 인력들의 경력이 단절된다”며 “당장의 건설 일자리뿐 아니라 중산층 일자리와 지역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반도체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또 다른 곳은 경북 구미다. 구미에 본사를 둔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을 SK그룹이 최근 매각 대상에 올렸기 때문이다. SK실트론은 2022년 구미산업단지에 1조495억원을 투자해 300㎜(12인치) 실리콘 웨이퍼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2026년까지 약 2조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을 밝혔었다. 하지만 경영권이 변경될 경우 투자 중단이나 본사 이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미시 관계자는 “구미는 반도체 완제품을 생산하는 용인이나 평택과 달리 칩 소재 및 부품을 생산하는 특화 단지”라며 “이러한 특성을 살려 SK실트론이 구미를 떠나지 않도록 시 차원에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