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스톰' '北 비핵화'에 韓·日 공조…中은 양국에 러브콜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 폭탄’이 다음 달 2일로 다가온 가운데 한·중·일 3국 간 외교 무대에서도 트럼프발 위기 상황 대응이 화두에 올랐다. 하지만 3국의 입장은 미묘하게 갈렸다. 한국과 일본은 공조를 강화하면서도 미국의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감지된 반면,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전쟁’에서 한·일 양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연출됐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오른쪽),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가운데),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2일 일본 도쿄 외무성 이쿠라공관에서 만나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태열 외교부 장관(오른쪽),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가운데),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2일 일본 도쿄 외무성 이쿠라공관에서 만나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2일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일본 외상,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일본 도쿄에서 한자리에 모여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를 열었다. 2023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이후 1년 4개월 만이었다. 3국 외교장관은 회의 종료 후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고, 3자 회의와 양자 회담을 이어나가며 지역 정세와 3국 공통의 과제 해결을 위한 협력 등에 대해 논의했다. 그런 가운데 대미 문제도 다뤄진 걸로 파악됐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대응에서 한국과 일본 간 공조가 주목됐다. 조태열 장관은 일련의 회담을 마친 후 특파원들과 만나 “일본과 양자회담에서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 속에서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는 한·일 양국의 대응 방안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한국 측은 중국을 포함한 3국 간 협력에는 선을 그었다. 한국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상호관세에 대한 공동 대응 관련 질문에 “3국간 협력 방안 협의는 없었다”며 “한·중 양자(회담) 때는 중국이 그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한·일 양자(회담) 때는 각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참고차 정보 공유 수준의 얘기가 있었다”고만 답했다.

지난 22일 도쿄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상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지난 22일 도쿄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상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왕이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다만 이와야 외무상은 같은 질문에 “미국에 대해선 어느 회담에서도 주요 화두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미국과 무역 갈등 등이 3국 회의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를 꺼렸다는 의미였다. 

그러면서도 “한국과는 일·한·미 간에도 계속 긴밀하게 연계해 나가고, 미국과도 확실히 서로 소통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와야 외상은 또 “현재의 전략적 환경에서 일·한 관계의 중요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 3국 정상회의 개최 시기에 대해선 “한국의 정국 안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반응은 달랐다. 왕 부장은 트럼프 행정부를 견제하며 한·중·일 3국의 협력 강화를 촉구하는 발언을 자주 했다. 왕 부장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역내 경제통합을 추진하는 것도 합의했다”며 “3국은 자유무역협상(FTA) 재개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확대 추진, 지역 내 공급망 원활화를 위한 대화와 소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견지하고 경제 글로벌화를 더욱 포용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사실상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반발심을 강조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21일 일본 도쿄 총리실에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상,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함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합동 예방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21일 일본 도쿄 총리실에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상,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함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합동 예방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왕 부장은 전날 조 장관, 이와야 외상과 함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도 이런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왕 부장은 “우리 3국에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속담이 있다”며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계에서 동양의 지혜가 담긴 이 격언이 3국 협력의 중요성을 잘 드러낸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이 같은 왕 부장의 발언들을 놓고 한국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3국이 손을 잡고 대응하자는 취지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런 뉘앙스를 띄고 얘기를 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미국의) 수출 규제가 부당하다며 반세계화 추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그런 것들이 확산하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원론적인 중국의 입장을 얘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경청했지만, ‘그렇게 해야죠’라고는 말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공조 요청에 동의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북한 문제 두고도 한·일과 중 입장차

또 조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3국의 공동 이익이자 책임이란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며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 안정에 영향을 받는 3국의 소통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적인 러·북 군사협력은 즉각 중단돼야 하며 우크라이나 종전 과정에서 북한이 잘못된 행동에 대한 보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일본 도쿄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이와야 다케시(오른쪽) 일본 외상이 회담을 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지난 22일 일본 도쿄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이와야 다케시(오른쪽) 일본 외상이 회담을 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이와야 외상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과 암호자산 탈취, 러·북 군사협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북한의 비핵화가 일·중·한 3국의 공동 목표”라고 말했다.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 등 사실상 조 장관과 뜻을 같이 한 셈이었다. 

하지만 왕 부장은 달랐다. 왕 부장은 북한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각 측은 한반도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고 마주 보고 선의를 내보여야 한다”며 “중국은 관련 측,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전통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표명해 온 입장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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