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내 한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들이 등원하고 있다. 뉴스1
대기업들이 출산·육아 복지를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빠 육아휴직’ 사용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 ‘톱 10’ 중 남성 육아휴직률이 두 자릿수인 기업은 두 곳뿐이었다. 올해부터 상장사 사업보고서에 육아휴직률 공시가 의무화되면서 기업별 현황이 처음 공개됐다.
25일 각 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 톱 10 중 삼성전자(13.6%)와 LG에너지솔루션(22.7%)만 남성 육아휴직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나머지 8곳은 한 자릿수로, 여성 육아휴직률이 70~90%대인 것과 대조적이었다. 육아휴직률은 당해 출생 1년 이내의 자녀가 있는 직원 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비율을 말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3.93%), 삼성바이오로직스(5%)가 남성 육아휴직률이 특히 낮았다. 여성 육아휴직률의 경우 삼성전자(97.8%)가 가장 높았고, 현대차(91%), KB국민은행(90.74%)도 90%를 넘겼다.

김주원 기자
범위를 코스피 ‘톱 20’으로 넓혀도 남성 육아휴직률이 두 자릿수인 기업은 7곳(삼성전자·LG에너지솔루션·HD현대중공업·포스코·한화오션·LG화학·카카오)에 불과했다. SK이노베이션은 3.26%로 톱 20 중 최저였다. 정보기술(IT) 기업인 네이버(8.6%)와 카카오(12.3%)도 육이휴직률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조직문화가 유연하다고 알려진 IT 업계에서도 1년 내 배우자가 출산한 남성 직원 10명 중 1명 남짓만 육아휴직을 쓴다는 뜻이다.
공시 첫해인 만큼 미흡한 점도 있었다. SK하이닉스와 셀트리온, 현대모비스 등은 육아휴직률을 산정하면서 만 8~9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을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여성 육아휴직률이 10%대로 낮게 나와 다른 기업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육아휴직 사용률에 대한 정확한 공시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이 최근 출산장려금, 육아기 단축 근무, 난임 치료 지원 등 복지를 경쟁적으로 늘리는데 남성 육아휴직은 왜 아직 저조할까. 삼성전자(2022년 8.3%→2023년 12.2%→2024년 13.6%)처럼 매년 남성 육아휴직률이 늘어나는 기업이 있는 건 긍정적이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도 12.1%→19.5%→22.7%로 매년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는 4만1829명으로 전년 대비 18.4% 늘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다만 보편화된 여성 육아휴직보다 상대적으로 남성들은 ‘눈치 보는 분위기’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화학계열사에 다니는 남성 김모(39)씨는 “맞벌이하며 세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어 육아휴직을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용기가 안 났다”라며 “30대 후반은 차장 승진 시기인데 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는 순간 승진은 아예 포기해야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데다, 인재 확보를 위해서도 기업들이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문화를 만드는 건 필수적이다. 기업들은 3040 직원들이 육아기에 회사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고, 로열티와 업무 생산성 향상을 위해 다양한 육아 복지 제도를 고민 중이다. 두산그룹은 지난달 6개월 이상 육아휴직자가 속한 팀 직원들에게 1인당 최대 50만원을 지급하는 ‘동료 수당’까지 만들었다.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한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률이 각각 67%, 71%로 주요 대기업 중 가장 높았다. 2017년 롯데그룹은 대기업 중 처음으로 남성 육아휴직 1개월을 의무화했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남성 육아휴직률을 상사 인사평가에 반영하는 등 강제성이 있어야 조직 문화가 바뀔 것”이라며 “시대적 흐름이 워라밸을 중시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데, 지금 기업이 일·가정 양립 제도를 망설이면 우수 인재를 뺏기고 몇 년 뒤 성과가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남성 육아휴직을 강제하는 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오너와 최고경영진이 의지를 가지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