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월 넘게 전쟁이 이어져온 가자지구에서 이틀 연속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무장정파 하마스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위가 확산하면 이스라엘과 휴전 문제 등 가자 사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매개로 20년 가까이 가자지구를 장악해온 하마스가 더는 '비빌 언덕'이 없어진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2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야에서 반(反) 하마스 구호를 외치며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AP통신 등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야 지역에선 전날에 이어 3000여명의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하마스를 규탄했다. 이들은 “하마스가 붕괴되길 원한다”고 외치며 하마스 축출을 강력히 촉구했다. 하마스 본거지인 가자시티에서도 “하마스는 떠나라”는 시위대의 구호가 나왔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시위를 진압하려던 하마스 무장대원이 구타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외신들은 “장기화된 전쟁에 지친 주민들의 분노가 심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26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한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야의 가자지구 주민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시위는 이스라엘이 휴전 두 달여만인 지난 18일 재개한 대규모 공습으로 사흘 동안 600명 가까이 사망한 이후 촉발됐다. 지난 2023년 10월 발생한 전쟁으로 누적 사망자 숫자는 5만 명을 넘어섰다.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의 약 90%가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됐다. 이스라엘은 이달 초 물·식량·연료·의약품 등 인도적 구호물품의 가자지구 반입도 전면 차단한 상태다.
시위에 참가한 한 주민은 AP에 “시위는 정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관한 것”이라며 “이스라엘이 우리를 죽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하마스가 양보하도록 압박할 순 있다”고 말했다.
WSJ는 “이번 시위와 하마스에 대한 노골적인 저항은 17개월간의 전쟁 끝에 약화된 하마스의 입지를 반영한다”고 전했다. 하마스 정치국 간부인 바셈 나임은 2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가자지구 주민들의 집회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비난은) 범죄 침략자(이스라엘)를 향해야 한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러나 시위에 노골적인 개입 등은 자제하고 있다. WSJ는 최근 이스라엘의 공습 재개로 하마스 고위지도부가 잇따라 사망한 것도 소극적 대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2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 라히야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로 가자지구 내 하마스에 대한 지지 여론은 하락세다. WSJ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센터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가자지구 주민의 39%가 하마스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전쟁 발발 직후인 2023년 12월 조사에선 지지율이 57%였다. 2006년 치러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압승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이끄는 온건 성향의 ‘파타’와 자치정부 구성에 실패하자 이듬해 파타를 몰아내고 가자지구를 통치해왔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가자지구 주민들의 하마스 반대 시위에 동참을 독려하고 나섰다. 그는 26일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당신도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철수시키고 모든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며 “그것만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