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도 여소야대…DJ, 대통령제 폐단 없애려 개헌안 마련 지시”
“한나라당 반대해 무산…국회서 총리 선출하는 분권형 개헌 바람직”
장면 하나. 정국의 시계를 20여 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임기 후반인 2001~2002년, 김대중 대통령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진승현게이트 를 시작으로 이용호게이트, 최규선게이트가 터지면서 이른바 ‘홍삼트리오’ 아들 비리가 발목을 잡았다.
국정운영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16대 국회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제1당이었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과 JP의 자민련이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주요 법안들의 국회 통과가 시급했지만 유력 대권주자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개헌을 추진해야겠소. 안을 마련해 오시오.”
그날부터 정균환은 은밀히 유럽식 대통령제 모델을 보완한 한국형 분권형 개헌안을 준비한다. 정 대표가 가져온 개헌안을 꼼꼼히 읽어본 DJ는 흡족해했다. “바로 이거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추진해봅시다.”
하지만 집권당의 대화 파트너인 한나라당은 개헌안을 외면했다. 와신상담,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이회창 총재가 동의할 리 없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흐른 2025년, 여의도 정치권에 다시 개헌론이 백가쟁명으로 분출하는 가운데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 대토론회’가 열렸다. ‘대한민국 헌정회’(회장 정대철)와 민추협이 공동주최한 행사였다. 김무성 민추협 공동회장이 토론 진행을 맡고,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기조발표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이시종 전 충북지사, 여상규 헌정회 사무총장이 토론했다. 자료집에는 정균환 회장이 20여 년 전 만들었던 한국식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이 수록됐다. 기자가 정 회장을 찾은 이유다. 3월 10일 서울 용산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정 회장과 마주 앉았다.
집권 여당의 개헌안을 정책위의장이 아닌 원내대표가 마련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인 내가 당 연구기관까지 다 관장하고 있을 때입니다. 16대 국회부터 원내 정당화가 시작됐어요. 돈 들지 않는 정치를 하자, 당사(黨舍)가 필요 없게 국회로 다 들어오자. 엄청난 정치 혁신을 한 거죠.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정책위의장을 원내대표 밑에 뒀어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정책 문제도 원내대표인 저를 불러 지시하신 겁니다.”
정균환
1943년 전북 고창 출생
13·14·15·16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16대 국회운영위원장
현재 헌정회 부회장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
13·14·15·16대 국회의원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16대 국회운영위원장
현재 헌정회 부회장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
4반세기 만에 재조명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
4수 끝에 대통령이 된 DJ가 정작 대통령 권력을 제한하는 분권형 개헌안 마련을 지시했다니 의외입니다.
“당시 정국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집권당이니까 정책이든 예산이든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을 해서 여소야대 국회지만 합의로 법률이 통과되는 선례도 많이 만들었죠. 하지만 결정적일 때, 예를 들어 국회 예결위(예산결산위원회) 회의를 하는데, 한나라당이 반대하니까 한 발짝도 진행이 안 돼요.”
여소야대 정국에서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어려움이 크셨겠습니다.
“그때 저와 대화하던 한나라당 파트너가 서청원, 이재오, 이규택, 정창화, 홍사덕 의원이었어요. 저 혼자 원내대표를 4년 가까이 하던 시기에 한나라당은 5명이 거쳐 갔어요. 국회 끝나면 그 사람들하고 식사하고 술도 한 잔씩 하곤 했죠. 주말이면 언론인들을 초청해서 우리 ‘국민의 정부’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알려주고, 앞으로 정책을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그다음에는 여야 의원들 초청해서 운동(골프)하고… 주말이면 하루에 두 번씩 그렇게 했어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대상포진까지 걸렸죠.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은 ‘국민의 정부’가 성공해야 대한민국의 미래도 있다고 생각해서 몸을 던져서 한 거죠.”
당시 DJ가 개헌안을 추진한 배경이 있을 텐데요?
“2001년경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개헌 문제를 고민하셨어요. 첫째, JP와의 약속(내각제)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의원 수가 한나라당에 밀리니 도무지 뭘할 수가 없어요. 또 하나, 국민들에겐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 그런 정서가 있었어요. 김대중, 김영삼 두 민주투사 모시고 전국을 다니면서 투쟁해서 얻은 게 87년 대통령 직선제 원포인트 개헌이에요. 그 헌법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까지 척결해서 더는 군사쿠데타 못 일으키게 뿌리를 뽑았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50년 만의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뤘고요. 그 바탕 위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민주국가로 발돋움한 거죠. 하지만 강력한 미국식 대통령제에 바탕을 둔 87년 헌법은 장기집권 방지와 대통령직선제 실현이라는 최소목표에 초점을 맞췄기에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정균환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이 2002년 제작해 배포한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 책자. 정치개혁의 방안으로 독일식 대통령제를 보완한 한국식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하고 있다.
“대통령직선제에 초점 둔 87년 헌법, 시효 다해”
어떤 문제들이 있었나요?
“군부독재 정권 때 유지됐던 헌법이 국회 해산권만 빼고는 그대로 이어져 왔잖아요. 대통령의 권한을 엄청 세게 만들어 놓은 거예요. 그 헌법으로 대통령을 뽑으니까 집권하면 모든 권력이 청와대로 통해 버린 거예요. 로비하는 사람들은 수단 방법 안 가려요. 그러다 보니까 김영삼 대통령도 아들이 구속됐고, 김대중 대통령 아들들도 구속되는 현상이 벌어진 거예요. 제왕적(帝王的) 권력집중, 조기 레임덕, 권력형 부정부패 등 국가경쟁력을 좀 먹는 폐해를 빚어낸 겁니다. 이걸 극복해내려면 결국 헌법을, 권력 구조를 바꿔야겠다,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김대중 대통령이 하신 거예요. 제가 정리한 개헌안 취지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어요”
정균환 회장이 가져온 소책자 한 대목을 펼쳐봤다. “YS나 DJ 같은 민주투사 출신 대통령 아래서도 대통령 아들과 친인척의 국정농단과 권력형 부정부패는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 아들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의 일단이다. 대통령 개인의 민주적 인격으로 헌정체제의 제도적 폐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당시 정서로는 최고 권력자에게 과감하게 쓴소리를 한 것이다. 집권 정당의 고위직이면서도 심기 경호나 일삼는 지금과는 차이가 컸던 셈이다.
JP와의 내각제 합의를 지키려는 뜻도 있었지만, 대통령제가 가진 폐해를 DJ가 몸소 경험했기 때문에 개헌을 추진하려 했다는 그 말씀이네요.
“그게 2001년 말~2002년 초 상황입니다. 권력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지 대책을 세워서 가져오라고 제게 오더를 내리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전문 학자들을 전부 모셔놓고 토론도 하면서 권력 구조를 바꾸는 개헌안을 정리했습니다. 국가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중앙정부의 권력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분산시킬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제 이름으로 정리한 거죠. 결론은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고,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하자. 이렇게 하면 권력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고 안정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한 거예요.”
읽어봤는데,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 내치(內治)는 총리가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이더라고요. 이원집정부제 비슷해요.
“맞아요. 유럽의 작은 공화국들은 국가수반과 정부 수반을 기능적으로 분리해서 국가원수는 내정에서 손을 떼고 외교안보·비상(非常)국정만을 맡도록 했어요, 그렇게 해서 ‘최고 권력은 분산시키되 국가원수의 권위는 강화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발전시킨겁니다. 이원집정부제의 독일식 대통령제와 독일식 총리제를 보완해 제가 한국식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이름 지은 것이죠. 분권형 대통령제는 평시에 총리의 권한이 우세해 내각제에 접근하는 반면, 비상시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우세해져 대통령제에 접근하는 가변적 제도입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도 지난 2월 11일 동아시아연구원이 개최한 개헌 관련 세미나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한 바 있다. 그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에게 권한을 주되, 대통령에게는 총리 지명권을 줘 균형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균환 회장의 분권형 개헌안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당시 DJ에게 보고됐을 텐테, 왜 실행이 안 됐던 겁니까?
“2001년 말에 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했지요. 대통령이 개헌안을 꼼꼼히 다 읽어보신 뒤에 ‘이거다! 대한민국의 국정을 위해서는 이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도다. 추진합시다’ 하셨어요. 그 뒤로 한두 번 더 보완해서 2002년에 최종안이 완성됐지요. 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이고, 대통령 임기 말이라서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역부족이에요. 그래도 제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제안해서 공약집에도 수록됐죠.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후에 책임총리제만 했어요. ‘그걸 먼저 해보고 나중에 분권형 대통령제 이걸 하겠습니다’ 했는데 그걸로 끝나버렸죠. 물론 당시 이해찬 총리에게 많이 힘을 실어줬지만 그건 인간관계에 의해서 밀어준 것이지 제도화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어요.”

지난 3월 6일 대한민국 헌정회와 민주화추진협의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 대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김부겸·이낙연 전 총리, 정균환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회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헌정회 회장. 임현동 기자
“국민 여론이 압도적이면 이재명 대표도 받아들일 것”
그렇게 만든 개헌안이 20여년 만에 다시 재조명된 이유도 궁금합니다.
“그때 제가 사비를 들여 인쇄해서 2002년에 16대 국회 여야 의원들과 언론인, 국회도서관과 전국의 도서관에 기증했어요. 이번에 헌정회가 개헌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당시 소책자에 실렸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을 부록으로 실었더군요.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계엄 사태로 대한민국 국격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잖아요. 이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면 2002년에 주장했던 이것을 지금이라도 실행하는 것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개헌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분권형 대통령제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손학규 전 대표가 3월 6일 토론회에서 내각제를 주장했는데, 정치라는 건 국민과 함께 가야지 정치인만 갈 수가 없어요.”

여의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지금이 개헌을 단행할 절호의 기회라는 여론이 일고 있다. 사진은 3월 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 대토론회 장면. 나권일 선임기자
민추협은 이 분권형 개헌안을 어떻게 여론화시킬 예정이신가요?
“우리나라 대통령마다 임기 말이 다 좋지 않게 끝났잖아요. 미국식 대통령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이렇게 크구나 하는 것을 국민들이 잘 몰랐다가 이번 계엄 사태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됐잖아요. 그래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개헌에 대한 국민 열망이 크다고 봐요. 우리 헌정회와 민추협이 전국을 다니면서 기자회견도 하고 또 서명 운동도 하면 여론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론 이기는 정치인은 없습니다. 압도적으로 개헌하자고 하는 분위기가 되면 이재명 대표가 아니라 그 누구든 승복할 수밖에없다고 봐요.”
나권일 월간중앙 선임기자 na.kwoni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