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정치권 주요 인사가 28일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서해 수호의 날’을 기념했다. 이 대표가 이 행사에 참석한 건 대표 취임 이후 처음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전에서 희생된 55명의 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법정 기념일로 지정돼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서해 수호의 날’ 행사는 이날 오전 국립 대전 현충원에서 진행됐다. 한 대행은 기념사에서 “나라를 지키다 장렬히 산화한 영웅 한 분 한 분의 고귀한 헌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며 “정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분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을 향해 “지구상에서 가장 퇴행적인 정권”이라고 비판한 한 대행은 “그들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장하며 미사일 발사, 전파 교란 등 위협적인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뒤 “북한의 위협 속에서도 정부와 군은 국민들이 안심하고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고, 국제 사회와 연대를 강화함으로써 안보 태세를 확고히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0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 대표는 권 위원장과 함께 나란히 이날 행사장 앞줄에 앉았다. 이 대표는 2022년 8월 대표에 취임했지만 2023년과 지난해엔 행사에 불참했다. 기념식 참석에 앞서 민주당 대전시당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이 대표는 “북한의 기습 공격과 도발에 맞서서 서해 바다를 수호한 영웅들을 기억한다”며 “국민의 안전한 일상을 위해 목숨을 바쳐 산화한 55인의 용사들과 모든 장병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가슴 깊이 경의와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안보 정책을 두고는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원칙에는 이견이 없다”며 “국가 유공자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민주당이 앞장서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회의실의 백드롭(배경막) 문구를 ‘호국 영웅의 숭고한 희생을 받들겠다’로 교체했고, 묵념으로 회의를 시작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정치권에선 “조기 대선을 의식한 변화”라는 분석이 나왔다. 경제 현안에 대해 그랬듯이 안보 분야에서도 일종의 ‘우클릭’ 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여권으로부터 ‘친(親)중국’이라는 비판을 받아오던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최근 중국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철골 구조물을 무단 설치한 것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장병들의 피땀으로 지켜낸 서해는 중국의 불법 구조물 설치로 여전히 수난 중”이라며 “민주당은 모든 영토 주권 침해 행위를 단호히 반대하고, 우리의 서해 바다를 더욱 공고하게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대표에 대한 반발도 상당했다. 이 대표가 이날 기념식 종료 후 퇴장하는 과정에서 한 유족이 이 대표에게 달려들며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수행원이 곧바로 제지해 이 대표와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진 않았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전사한 고(故) 민평기 상사의 친형 민광기(55)씨는 전날 페이스북에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참석하는지 묻고 싶다”며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고, 생존 장병과 유족들에게 막말과 상처(를) 주고, 한마디 사과와 반성 없이 서해 수호의 날 행사를 참석한다고 한다. 피가 거꾸로 솟고 역류해도 참고 참았다”라고 글을 썼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을 마치고 퇴장하던 중 유족의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에선 이 대표가 지금 시점에 기념식에 참석한 걸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해 행사는 총선 직전이었지만, 2023년 행사 당일 이 대표는 울산에서 현장 최고위를 주재했기 때문이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이 55명의 희생 장병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롤콜(roll-call) 방식의 추모를 했던 현장에 있었던 여권 고위관계자는 “그동안은 외면하다가 조기 대선이 열릴 것 같은 지금은 왜 참석을 했느냐”며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이날 이 같은 요구에 직접 답하진 않았다. 대신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과거 민주당 인사가 제기한 ‘천안함 자폭설’ 등과 관련해 “국가가 결정한 것에 대해 그 누구도 의심한 사람이 없다. 민주당과 이 대표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대표는 행사 직후 경남 산청 화재 현장으로 이동해 이재민을 위로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국민의힘 지도부도 역시 한목소리로 추모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희생된 영웅들의 용기 위에 세워졌음을 잊지 않겠다”고 적었다. 권영세 위원장은 전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국가 유공자 판단 기준을 다각화하고, 영웅들의 공훈이 공정하게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