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000L 기름창고 터지면 끝장"…그날 교도관은 소방관이 됐다

지난달 25일 오후 7시40분쯤, 신동호(42) 경북북부제3교도소 교도관 앞에 놓인 것은 6000L짜리 유류창고를 덮치려 드는 검붉은 산불이었다. 동서남북에서 불어치는 바람을 타고 불씨가 공기 중에 흩날렸고, 나무와 잔디에 붙은 산불이 유류창고를 향해 길을 내고 있었다. 창고에는 제3교도소 난방에 사용되는 등유가 담겨 있었다. 창고는 교도소 벽 바깥으로 열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걸어서 3분이면 100여명이 생활하는 여자 수용동에 도착한다. “여기가 터지면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고 신 교도관은 회상했다.

그를 비롯한 20여명의 교도관들은 소화기와 소화전 호스를 손에 들고 창고를 둘러 감쌌다. 닿는 모든 곳에 물과 소화 분말을 뿌렸고, 잔불은 발로 밟아 껐다. 코와 입을 감싸려고 가져간 물 묻은 수건도 산불 진화에 썼다. 물과 분말이 역바람을 타고 몸을 뒤덮은 지 한 시간여 만에 창고 주변의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날 창고 앞에서 동료들과 나눈 말들은 이렇다고 한다. “오른쪽 위험하니 조심해라.” “저쪽에 불이 번진다.” “교도소는 꼭 지켜야한다.” 경북북부교도소엔 이런 유류창고가 5개로, 총 3만1600L의 기름을 보관할 수 있다.

지난달 25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한 산불이 경북북부제2교도소를 휘감아 교도소 안의 시야가 흐리고, 공기 중에 불씨가 날리고 있다. 하늘은 검붉게 물들어 있다. 사진 법무부 교정본부

지난달 25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한 산불이 경북북부제2교도소를 휘감아 교도소 안의 시야가 흐리고, 공기 중에 불씨가 날리고 있다. 하늘은 검붉게 물들어 있다. 사진 법무부 교정본부

청송 1200명 교도관…“교도소, 목숨걸고 지켰다”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은 청송군에 위치한 경북북부교도소(옛 청송교도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4개 교도소를 감싼 광덕산을 타고 불길은 순식간에 번져 교도소 주벽을 감쌌다. 1200여명 직원들이 총출동해 수용자들을 대피시켰고, 산 중턱에 위치해 피해가 컸던 경북북부제2교도소 수용자 500여명은 인근 대구교도소로 이송을 갔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문경배(42) 제2교도소 교도관도 산불 진화에 나선 교도관 중 한 명이다. 문 교도관은 “점심쯤부터도 하늘이 붉었고, 재난문자도 계속 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6시쯤 경북북부교도소 맞은편인 비봉산에 불이 붙고, 그로부터 30분 뒤엔 교정시설로 통하는 유일한 출입구인 광덕초소 근처에 큰불이 났다. 함께 출동했던 신 교도관은 “아파트 2~3층 높이, 버스 두 대가 연달아 늘어진 넓이였다”고 기억했다. 40여명의 교도관이 초기 진압을 시도했으나 거센 산불을 이기지 못했다. 광덕산을 타고 불길은 빠르게 퍼져 제1~3교도소, 직업훈련교도소를 감쌌다.

지난달 25일 경북북부제2교도소를 둘러싼 광덕산이 산불에 휩싸인 모습. 사진 법무부 교정본부

지난달 25일 경북북부제2교도소를 둘러싼 광덕산이 산불에 휩싸인 모습. 사진 법무부 교정본부

문 교도관은 곧바로 제2교도소로 복귀해 수용자들을 대피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 교도소 안에도 매캐한 불냄새가 가득했다. 250여명의 제2교도소 직원들은 절반씩 나눠 수용자들을 운동장 등으로 대피시키고, 불을 끄러 나섰다. 소방당국에는 지원을, 법무부 교정본부에는 수용자들을 이송할 이동 차량을 곧바로 요청했다. 오후 7시쯤 불길이 산을 타고 2교도소 외벽을 휘감았고, 시야는 2~3m 정도밖에 확보되지 않았다. 문 교도관은 “솔직히 겁이 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했다.


제2교도소는 국내 유일의 중경비 교도소로 과거부터 조직폭력배 김태촌과 조양은, 초등학생 성폭행범 조두순 등을 수감한 곳이다. 수용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면 이송이 어려웠겠지만, 대피는 차분하게 진행됐다. 연파랑 옷을 입은 수용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교내 대운동장 등으로 피신했고, 그들 주위를 교도관들이 빙 둘러 감쌌다. 불안해하는 수용자들에게는 “꼭 대피시킬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교도관들이 지켜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후 8시30분쯤부터 이동 차량이 순차적으로 도착해 인근 대구교도소로 이송을 시작했다. 문 교도관은 “산불이 퍼진 도로가 모두 통제돼, 1시간30분 거리를 3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했다”고 말했다. 총 14대의 버스마다 30~35명의 수용자들이 탑승했고, 마지막 버스가 제2교도소를 떠난 시간은 오후 10시쯤이었다. 이상동기를 가진 범죄자들은 독거실에 수용됐고,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대강당에 대피해 모포를 덮고 밤을 보냈다. 제1‧3교도소, 직업훈련교도소의 수용자들은 교도소 내 운동장 등에 대피했다 산불이 진압된 오후 11시쯤 다시 수용동에 들어갔다. 수용자들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지난달 25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광덕산을 타고 경북북부제2교도소 주변을 휘감은 모습. 법무부 교정본부

지난달 25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광덕산을 타고 경북북부제2교도소 주변을 휘감은 모습. 법무부 교정본부

 
교도관들은 “큰불에도 인명 피해가 없었던 건 법무부 교정본부를 중심으로 미리 대응 계획을 세웠던 덕이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경북북부교도소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진규 제1교도소장은 “의성 산불 발화 이후 경북북부 4개 교정시설장들은 교정본부와 회의하고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대피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산불이 퍼져 4개 교정시설이 동시에 물을 틀게 되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계산을 다 해뒀다. 불이 퍼지자마자 생활수도는 모두 잠그고 모든 물을 산불 진화에 썼다”고 말했다.

경북북부교정시설 관계자들은 24일부터 교도소 주변에 물을 뿌렸고, 25일에는 신용해 법무부 교정본부장 등과 회의를 이어갔다. 신 본부장은 최 소장에게 “현장 지휘관에게 판단을 맡기고, 본부는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직원 비상소집, 신속한 대피와 이송이 가능했던 이유다.

교도관들의 헌신도 힘을 보탰다. 직원 일부는 기도화상으로 입원해 고압산소 치료를 받고 얼마 전 퇴원했다. 최 소장은 “교도관들이 목숨을 걸고 교도소를 지켰다. 한 교도관은 아흔 노모의 집이 불에 타는데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지휘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경북북부제3교도소 주변을 감싸자 교도관들이 산불 진압 작전에 나섰다. 사진 법무부 교정본부

지난달 25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한 산불이 경북북부제3교도소 주변을 감싸자 교도관들이 산불 진압 작전에 나섰다. 사진 법무부 교정본부

“방화복, 옥외소화전 추가 확보 필요”

이번 산불은 잡았지만 후속 대책마련은 시급하다. 기후 변화로 대형 산불이 반복되면 언제든 큰 피해가 날 수 있어서다. 다만 전국 교도소가 확보한 화재 진압 장비 현황은 열악하다. 이번 산불을 겪은 경북북부제1~3교도소와 경북직업훈련교도소의 직원은 약 1200명이지만, 보유한 방화복은 단 8벌이었다. 전국 54개 교정시설로 넓혀보면, 직원 수는 1만 6716명이지만 보유한 방화복은 105개뿐이다.

교도소에 설치된 옥외소화전이나 진화 장비도 보충이 필요하다. 법무부 교정본부 관계자는 “교도소는 기피 시설로 인식돼 보통 산속이나 외진 곳에 위치해 대형 산불 발생시 관내 소방서 지원을 받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도소 자체적으로 소방차량을 보유하면 빠른 대처가 가능하지만, 전국 교도소 그 어느 곳도 소방차량을 보유한 곳은 없다.

실내 화재 진압과 잔불 처리에 효과적인 소화기도 늘려야 하지만, 대형 산불을 끄기 위한 옥외 소화전 추가 설치도 필요하다. 불길이 사방을 감쌌던 제2교도소의 경우 24개의 옥외소화전이 설치돼 있었다. 교정본부 관계자는 “더 많은 옥외 소화전이 설치돼 있었다면, 교도소 주벽 전체를 둘러싼 불길을 더 빠르게 잡았을 것이다”며 “산불이 자주 발생하게 된 상황이라 추가 장비와 소화전 확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