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이런 위기 본적 없다, 정치 안바뀌면 경제 못 살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그의 이름 앞에는 ‘경제위기 소방수’란 수식어가 곧잘 붙는다. 1997년 외환위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에 이어 2009년 금융위기까지. 위기 때마다 그는 경제정책 현장에 있었다. 

재무부 금융국장,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거쳐 금융감독위원장, 기재부 장관을 지내면서다. 그런 그조차 지금과 같은 위기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윤 전 장관은 “전대미문의 내우외환이 겹친 총체적 복합위기”라고 말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3일 윤 전 장관을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났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하루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겨냥해 25% 상호관세 ‘폭탄’을 터뜨린 날이었다.

윤 전 장관은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관세정책을 1930년대 허버트 후버 당시 미 대통령이 펼친 보호무역 조치에 빗댔다. “1930년대 전 세계를 흔들었던 대공황은 그 당시 미국 정부가 했던 보호무역 고관세가 기폭제가 돼서 터진 것”이라며 “트럼프 관세로 인해 또 다시 전 세계가 불확실성에 빠져들었다”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는 트럼프발 관세 폭풍을 정면에서 맞고 있다. 윤 전 장관은 “한국은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로 수출을 통해 세계 8~9위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고관세 정책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며 “이런 가운데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정치ㆍ경제 사령탑이 사실상 와해되는 ‘내우’가 겹쳤다”고 했다. 위기 대응에 나서야 할 통상 리더십도 사실상 공백 상태다. 그가 현 상황을 두고 “총체적 복합위기”라고 진단한 이유다.  


윤 전 장관은 트럼프 정부가 고관세 정책을 1년 이상 이어간다면 미국 경제도 더 큰 어려움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했다. “우선 미국 국민이 버티지 못한다. 미국은 제일 좋은 물건을 제일 값싸게 수입해서 지금의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관세 조치로) 수입 물가가 크게 상승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대부분을 소비가 차지하고 있어 물가 상승을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업종별·분야별로 대응을 하되, 필요하면 관세로 대응하는 등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윤경제연구소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윤 전 장관이 조망한 한국 경제의 앞날은 어둡다. “트럼프 관세로 인해 수출 여건이 악화하고 내수까지 동시에 어려워지면서 고용은 굉장히 부진할 것”이라며 “어느 한 군데 기댈 데도 없고, 터널을 벗어나도 또 다른 터널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대한민국호(號)가 침몰까지 하진 않겠지만 흔들리고 요동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보기엔 4일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결과는 지금의 경기 흐름을 뒤바꿀 변수가 아니다. 정치권 행태 때문이다. “정치가 뒷받침이 안 되면 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고 윤 전 장관은 단언했다. “헌재 판결 전 여야가 승복한다는 메시지를 낸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정치는 4류 이하”라며 “소명 의식은 없이 ‘내가 국회의원을 오래 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춰 당의 단기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쓴소리 했다.

윤 전 장관은 올해를 한국 경제사가 뒤바뀔 변곡점으로 봤다. “대한민국 경제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올해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면서 개헌론을 꺼내 들었다. 그는 “1987년 헌법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거나 내각제로 가거나 해서 수명을 다한 대통령제를 바꾸고, 다수당의 입법 횡보를 막기 위한 행정부의 국회 견제 장치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면서다.   

윤 전 장관은 경제ㆍ산업 구조 개편도 주문했다. “그래도 경쟁력이 있는 분야가 기업이다. 한국 정치는 4류 밑일지 몰라도 기업은 1류다. 바이오를 비롯한 첨단 신성장 산업, K팝으로 대표되는 서비스 문화 산업을 키우고 동시에 산업 재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석유화학과 조선업을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한 대표 사례로 꼽았다.  

경제 문제도, 정치 문제도 결국 풀어내는 건 사람의 몫이다. 그는 정치는 물론 지금의 경제 리더십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며, 특히 개정 상법을 둘러싼 이복현 금감원장의 ‘튀는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 원장은 상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직을 걸고 막겠다”고 해 논란이 됐다. 상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윤석열 정부 기조와는 반대되는 주장이다. 

윤 전 장관은 “나였다면 (그런 행보를)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일 이전에 사람이고 시스템이 확보돼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혼선을 주면 어떻게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결국 사람을 잘 써야 한다”며 경제팀을 새로 꾸리게 된다면 “이론 없이 현장에만 있어도 안 되고, 물론 그 반대도 안 된다.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고도의 전문 인력이 와야 한다”고 조언했다.